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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지나고 나면 보이는 남의 허물

  • 입력 : 2018.05.18 15:52:57   수정 :2018.05.18 16: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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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을 알기란 참 쉽지 않다. 늘 급변하는 이 시대, 현대 한국 사회의 삶은 그래서 더욱 고되다. 죽어라 일하지만 지갑 사정은 언제쯤 좀 나아질지. 늘 사면 내리고 팔면 오르는 내 주식은 언제나 팔 때가 있을지. 불안한 노후는 또 어찌 꾸려갈지. 하물며 내일 비가 올지조차도 스스로 가늠하긴 어렵다. 그런 터에 과연 다음달 미·북정상회담은 잘 성사될지, 생전에 통일을 볼 수나 있을지, 이런 거대 담론은 필부의 관심법으로는 다 헤아리기 역부족이다.
무변 장구한 우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찰나로 반짝 살다가 꺼져버리는 것이 한낱 티끌 같은 인생이다. 그래도 오늘 삶의 고단함을 잠시 덜려고 또 어리석은 내일을 고민한다.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후회를 해봐도 이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다시는 이런 실수는 없어야 해. 그 바람에 또 허망한 내일 예측에 골몰한다.

필자와 같은 변호사는 순간의 선택 잘못으로 삶의 낭패가 법률 문제로까지 비화된 고객들을 종종 만난다. `그때 조금만 운전을 조심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 사람 말만 믿고 따라나서다니. 사기꾼 일당으로 몰려 어쩌지도 못하게 되어버린 지금, 이 일을 어찌한담?` 이 모든 일은 "조금만 더 주의하지 그랬어"라는 법적 질책으로 이어지곤 한다. "저는 착하게 살아왔어요"라는 말쯤은 덧붙여보고도 싶지만 법의 세계에서 이런 변명이 설 자리는 그리 넓지 못하다.

사업 실패로 옥고를 치를 분들 변호를 맡을 때 이런 아쉬움은 유별나다. 자기 사업을 말아먹은 70대 노인 피고인에 대한 배임죄 재판이 열렸다. 한 대목은 계열사 지원을 해 준 것이 배임이라는 것이고, 또 다른 대목은 다른 시점에서 지원 없이 방치한 것도 잘못이어서 이 또한 죄라는 것이다. 무슨 큰 욕심도 부린 바 없거니와 내 회사 내가 일부러 망가뜨린 것도 아닌데 지금에 와서 어쩌란 말인가. 이게 항변의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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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지원을 한 것도, 하지 않은 것도 다 무위로 돌아가 회사가 망한 것이 확인된 이 시점. 노인을 질책하는 젊은 법률가들의 목소리만 신바람이 났다. 법만 잘 아시는 줄 알았는데, 어쩜 저리도 사업에 눈들이 밝으실까! 중형을 선고받고 난 다음 돌아선 노인의 자탄이었다. 하지만 정작 묻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닐 게다. 정말 그 시점, 그 자리에서 당신들은 자신 있게 반대의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할 일, 안 할 일 가리는 게 말처럼 쉽냐고. 앞으로 자기 회사 망할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려고 그랬겠냐고.

누구든 모든 일이 일어난 걸 보고, 일의 잘잘못을 가리기가 쉽고 스스로를 대견해 한다. 특히 남의 허물을 들춰내기란 더더욱 그렇다. 사후적으로 나의 예견 능력을 과신하는 이런 현상은 머릿속 뇌가 만들어낸 일종의 환상이자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전형적인 실수다. 이런 편향을 두고 심리학에서는 후견편향(hindsight bias)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이 편향의 효과는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일반인은 물론이고 늘 뒷북치기 판단을 내려야 하는 법률전문가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 강도가 너무 심해지면 심각한 오판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2016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토머스 매카시 감독의 영화 `스포트라이트` 중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때론 종종 잊어버리는 것이지만, 우리는 어둠 속에서 넘어지면서 살아가요. 갑자기 불을 켜면 탓할 것이 너무 많아 보이죠."

어둠이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보이는 추악함을 우리는 두려워하여 불을 켜지 못한다. 더 큰 두려움은 불을 켜지 못하는 비겁함을 감추는 위선일 게다.
또 다른 두려운 위선이 하나 더 있다. 불 켜진 뒤 위선이 그것이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나는 다 옳았는데 너희는 왜 그 모양이었느냐고. 그런 위선 앞에서는 가슴 먹먹하다. 그것 또한 위선이라고 지적 못하는 나 자신의 비겁한 위선에 다시 숨이 막혀온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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