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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장경덕 칼럼] 위대한 쇼맨

  • 장경덕 
  • 입력 : 2018.05.08 17:16:34   수정 :2018.05.08 17: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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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지상 최대의 쇼다. 무릇 쇼는 범상치 않아야 한다. 지구촌에서 가장 범상치 않은 두 정상이 손을 맞잡는 순간을 누군들 놓칠 수 있겠는가.

`채널 고정`을 말하는 트럼프와 달리 세기의 쇼를 기다리는 우리는 초조하다. 이 초현실적인 리얼리티 쇼가 말 그대로 한바탕 쇼로 끝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무엇보다 그의 쇼맨십이 불안하다. 트럼프는 언제나 명성에 목말라했다. 늘 언론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스타이고 싶었다. 그는 미국 대선에서 지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만에 하나 김정은과 담판을 앞둔 각오가 그렇다면 큰일이다.

그의 세일즈맨십도 못 미덥다. 트럼프는 자신이 협상의 달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디테일에 약하고 골치 아픈 결정은 미루는 습성이 있다. 특히 그의 셈법이 걱정스럽다. 그는 협상에서 즉물적이고 즉각적인 보상을 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훗날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셈법에서 빠져 있다. 이게 나만의 편견일까.

지난해 7월 어느 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그는 장군들을 심하게 몰아세웠다. 아프가니스탄 병력 증파를 원하는 그들에게 16년 전쟁에서 도대체 미국이 얻은 게 뭐냐고 화를 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곳에 주둔해야 한다면 왜 돈을 벌지 못하느냐. 중국은 광산 채굴권을 가졌지만 미국은 갖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고 한다.

그해 1월 취임 직후 중앙정보국(CIA)에 갔을 때는 전 정부가 이라크에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잘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우리는 석유를 지켰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올해 3월에는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며 "우리는 무역에서 돈을 잃고 군대에서도 돈을 잃고 있다"고 했다. 마치 둘을 맞바꿀 수도 있다는 듯이.

김정은과 담판을 하면서 그가 얻고자 하는 건 뭘까. 카메라 불빛 세례를 받으며 지구촌 수십억 명의 눈을 사로잡는 것, 김정은에게 완전한(혹은 영구적인) 비핵화 약속을 받아내는 것, 역대 어느 대통령도 얻지 못했던 외교적 승리를 주장하며 자신에 대한 온갖 추문과 탄핵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것, 노벨평화상을 받고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보다 큰 명예를 얻는 것, 한국 정부에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더 물리고 통상 문제에서 양보를 더 받아내는 것….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의 셈법에 평화와 자유와 인권과 공영 같은 더 큰 이상과 대의가 아예 빠져 있거나 뒷전에 밀리지 않을까. 내가 걱정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 김정은과 만난 트럼프는 무조건 승리를 선언할 것이다. 중요한 건 그가 승리자로 보이는 것이다. 비핵화 이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건 북한의 약속 파기 탓으로 돌리면 된다. `승리를 도둑 맞았다`고 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그렇게 끝나고 만다면 참으로 허망할 것이다. 치밀한 준비 없이 허장성세로 끝나는 정상회담은 또 하나의 저급한 쇼에 불과하다. 우리는 결코 그런 결말을 원치 않기 때문에 지금도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다.

나는 지금 트럼프가 과연 뼛속 깊이 포퓰리스트인지를 따지고 싶지 않다. 이번 회담에 어떤 복잡한 개인적 동기와 정치적 셈법이 작용하는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촉구하고 싶다. 이번 회담은 외교 무대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그저 그런 쇼가 아니라 역사의 큰 변곡점이 될 위대한 쇼가 돼야 하며 그는 반드시 위대한 쇼맨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쇼맨은 무엇이 다른가. 우선 무대에서 보여주는 게 다를 것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부르짖었던 지도자는 언론의 화려한 조명이나 주한미군 비용 같은 곁가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런 것들로 미국이 위대해질 수는 없다. 21세기의 화약고가 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 대륙과 해양 세력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아시아·태평양의 세력 균형, 지구촌에 자유와 번영을 확산시키는 미국의 이상과 글로벌 리더십을 보다 차원 높고 통 크게 생각해야 한다.

위대한 쇼맨은 모두를 진정으로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는 역사의 물줄기를 돌릴 수 있다. 그건 얄팍한 눈속임이 아니라 책임 의식과 진정성으로 빚어낼 수 있는 마술이다. 그런 위대한 쇼맨이 무대에 오른다면 나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아니 두 손 모아 기도라도 할 것이다.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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