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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자사주 매입은 내 재산 팔아 내 월급 올리기

  • 입력 : 2018.05.06 17:20:22   수정 :2018.05.08 18: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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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가치`를 높인다면서 기업이 단골로 하는 것이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도 삼성이나 현대차그룹을 공격하면서 자사주 매입을 요구했다. 언론에서는 "통 큰 주주환원"이라고 미화한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자사주 매입은 내 재산을 팔아 내 월급을 올린 뒤 돈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가 조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주주 간에도 회사를 오래 잘 키우겠다는 주주는 손해 보고, 차익 내고 `먹튀`하려는 주주만 도와주는 것이다. 정부는 자사주 소각을 금지해야 한다. 기업에 정말 `잉여현금`이 있다면 배당으로 돌려주면 된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이 보유한 돈으로 주식시장에 풀려 있는 내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이다. 기업가치라는 입장에서 봤을 때는 똑같은 돈으로 기업이 금융상품에 투자해 운용하건, 자사주로 갖고 있건 마찬가지다. `주주환원` 수단으로 자사주 매입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자사주 소각을 동시에 요구한다. 이때도 기업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주식 수만 줄어든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것은 주가 움직임 판단 기준으로 많이 사용하는 `주당순이익(EPS·순이익÷주식 수)`이다. 회사의 이익(분자)은 똑같아도 주식 수(분모)가 줄어들기 때문에 주당 이익이 올라간다. 펀드매니저들이나 애널리스트들은 이 지표를 놓고 `사자`를 권한다. 내 재산을 팔아 내 월급을 인상한 뒤 내 재산 가치가 올랐다고 나에게 투자하라고 추천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실상을 모를 리 없는 헤지펀드들이 자사주 매입·소각을 요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단기 차익을 올리고 빠져나갈 수 있는 안전한 통로를 제공해준다. 기업이 주식을 사주는 동안에는 주가가 떨어질 염려가 없다. 2017년 삼성전자 주식 상승 과정에서 가장 큰 매입 세력은 삼성전자였다. 둘째, 세금 부담이 없다. 배당을 받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주가 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단기 투기꾼에게는 이렇게 좋은 일이지만 자사주 매입·소각은 중장기 투자자나 기업, 근로자, 정부에는 나쁜 일이다. 중장기 투자자들은 기업이 벌어놓은 돈으로 투자를 잘해서 기업가치가 올라가기를 바란다. 자사주를 사서 없애버리는 일에서 미래 가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지난 수년간 자사주 매입에 대해 경고해왔다. 에어스와 올레닉 교수는 `기업자살`이라고 비판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현금성 자산은 가장 중요한 투자 재원이다. 큰 투자 기회가 언제 올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돈을 갖고 기다리는 것이 좋지, 그 돈을 태워버리고 기회가 오면 돈을 빌려 투자하겠다고 할 수 없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투자하면 일자리가 생기지만 자사주 매입으로는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부 입장에서도 배당으로 주주환원을 유도하는 것이 조세정의상 합당하다. 자사주 매입은 주식을 팔고 나가는 주주들에게 환원하는 것이고 배당은 주식을 들고 있는 주주들에게 환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장기 투자자들에게는 세금을 받아내고 단기 투기꾼에게는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대기업 경영진이 보수의 상당 부분을 주식이나 주식 옵션으로 받기 때문에 자신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 헤지펀드 요구에 못 이기는 척하며 대폭 수용하는 관행이 일반화돼 있다. 윌리엄 라조닉 교수는 이를 `불경한 동맹`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미국 대기업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벌어들인 수익의 거의 전부를 주주에게 환원했다. 이 중 3분의 2가량이 자사주 매입이었다.

한국은 다행히 아직 이런 수준까지 가지 않은 상태다. 더 늦기 전에 정책당국이 나서서 자사주 소각을 금지해야 한다.
자사주 매입 자체를 금지할 필요는 없다. 자사주는 인수·합병에 쓸 수도 있고 우리사주에 넣어 근로 의욕을 북돋울 수도 있다. 그러나 자사주 소각은 아편이다. 아편 판매상들이 `주주가치`를 내세우며 기업에 아편을 만들어달라는 행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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