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오피니언

[책과 미래] 복종의 문화를 넘어서

  • 입력 : 2018.01.12 15:41:54   수정 :2018.01.12 16:10:08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27922 기사의 0번째 이미지
한 은행이 신입사원 연수 중 100㎞ 행군에 참여할 일부 여직원에게 피임약을 나눠 주었다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행군이라니? 은행이라는 일터를 전쟁터에 유비하는 낡은 상상력도 기막히지만, 이어진 은행 관계자의 해명마저 한국 사회의 후진적 기업문화를 드러내는 듯하다.

"피임약은 자발적으로 요구한 경우에만 나눠 주었고, 건강상 행군이 어려운 사람은 빠질 수 있도록 조치도 했다."

`스튜핏!` 이 대답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남성 중심적 `여혐` 사고다. 묻고 싶다. 일거수일투족을 평가받는 신입사원이 월경 같은 신체건강을 사유로 행군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는 입장일까. 신입사원이 실제로 행군에서 빠졌을 때 그 사람의 고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시스템을 이 은행은 갖추었을까. 또한 이를 명백히 고지하고 동일한 고과를 받을 수 있는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해 두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행군을 앞두고 피임약을 운운한 것은 신입사원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행군에 참여하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으며, 인간의 생체리듬까지 통제하고 관리해 회사 목적에 맞게 동원하는 파시즘적 행위에 해당한다. 신입사원 교육자의 이런 상식적 사고가 미달한 직장이라면, 이곳은 아마도 보건휴가를 눈치 보고 이용해야 하는 `여혐 일터`일 가망성이 아주 높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관계자의 말에는 `자발적 복종`이면 아무 상관없지 않냐는 생각이 깃들어 있다. `복종의 문화`에 깊게 중독된 것이다. 연수자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했다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교육자의 부당한 명령은 지독한 인간적 모멸감을 주는 고문이나 다름없으며, 궁극적으로 연수자들을 무력감이나 무책임을 동반하는 `병적 충성`으로 몰아간다.

`복종에 반대한다`에서 독일의 정신의학자 아르노 그륀은 "우리 문화가 근본적으로 복종을 권하고 있다"고 말한다. 폭력을 통해 인간을 `복종하는 주체`로 길들이는 문화는 `타인의 의지를 집행하기만 하는` 텅 빈 주체, 즉 노예근성에 사로잡힌 타율적 주체를 낳는다는 것이다. `죽음의 무도`로 미화되는 아우슈비츠 대학살을 저지른 이들 역시 자발적 복종자였다.

복종의 문화는 인간의 주체성을 파괴한다. 자기 자신이 사라진 인간은 주어진 일만 반복한다.
타율적 주체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찍이 한나 아렌트가 통찰했듯이, 학살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무사유`였다. 인공지능이 등장해 인간지능의 창조성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대에, 이 은행이 바라는 인재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일 리 없다. 낡은 교육체계의 전면적 재검토를 촉구하고 싶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

박재현의 경제노트 더보기

박재현의 경제노트 썸네일Gold 투자 할 때인가?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