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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과 글씨 이야기] 오래된 비석의 생명력

  • 입력 : 2018.01.12 15:39:21   수정 :2018.01.12 16: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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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돌에 글자를 새겨 세운 비(碑)는 예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 형태는 물론 그 표면에 새긴 글과 글씨는 그 시대 문화 수준을 고스란히 반영하기에 좋은 비 하나는 `시대 문화의 정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비`는 414년, 고구려 장수왕이 부친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다. 시조 동명성왕으로부터 이어진 계보의 위대함과 선대왕의 업적, 왕릉 관리에 관한 규정까지 기록했으니 이 비는 국가 사업으로 세워진 기념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500여 년이 흐르도록 이 비는 이끼에 덮인 채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지워져 버렸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이 비는 세상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탁본을 얻으려는 수요가 몰렸다. 인근 주민들은 탁본을 떠서 팔기 시작했고, 표면에 낀 이끼가 탁본 작업에 방해가 되자 그것을 제거하느라 비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 불같은 호기심의 중심에는 비문의 내용은 물론 그것에 새겨진 글씨 스타일, 서체가 있었다.

이 비를 세운 414년은 중국의 위진시대 말기에 해당한다. 이 비로부터 반세기 전, 중국 동진(東晉)에는 뒷날에 서예의 성인으로 추앙받게 되는 왕희지(王羲之)와 그의 아들 왕헌지(王獻之)가 활동했고 이들은 우아함과 헌걸참으로 남북조시대 이후 서예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전범이 되었다.

동시에 북방에서는 굳센 기백이 눈에 띄는 글씨들이 전통을 이루었는데 이들은 후한 시대에 난숙한 단계에 오른 팔분서(八分書)를 계승했지만 각이 선명하고 꺾임과 삐침, 파임 등이 강조되는, 질박하나 힘찬 기세가 돋보이는 글씨들이었다. `광개토대왕비`에 쓰인 글씨는 이와 같은 시대 배경 속에 쓰이고 새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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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광개토대왕비 탁본`의 부분.
그런데 제왕이 세운 이 기념비의 글씨는 이런 배경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시대의 유행과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왕희지나 왕헌지의 글씨풍이 아니거니와 고구려가 이웃했던 북방지역에 세워졌던 비에서 보이는 글씨풍도 아니다. 이 비의 글씨는 세련됨과는 거리를 두려는 듯이 투박해 보이나 정방형 틀 속에 획 사이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해 엄정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정방형의 틀은 후한시대 팔분서에서 볼 수 없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전한시대의 예서에서 엄격하게 지킨 형태다. 오늘날 박물관에 있는 전한시대 청동거울에서 정방형 형태의 글자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광개토대왕비`는 동시대 유행은 버리고 수백 년 거슬러 올라간 시대의 글씨 형태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고구려인들이 대륙을 풍미하던 글씨풍을 몰랐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비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모두루 무덤`의 벽에 먹으로 쓴 글씨가 최신 유행의 글씨와 다름이 없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대한 제왕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면서 당대 유행하는 글씨를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었으나 `오래된` 스타일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비에 오래된 스타일의 글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에는 5세기 초, 고전적 예서에서 `현대적` 해서로 이행하는 단계를 반영하는 글자도 여러 개 있기 때문이다. 그 글자들은 과거 고전의 엄정함과 현재의 모더니티가 융합한 요소들로, 예술의 진보가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며, 군사 강대국으로 성장하던 고구려가 문화적 생명력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비의 주인공, 제왕 광개토대왕이 이룬 위업을 뒷받침한 힘은 고구려의 젊음이었고 그 젊음은 문화적 생명력인데, 그것이 이 비에 새겨진 글씨에서 보는 `선택`에도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이 비에서 읽어야 할 것이 이런 `생명력`일 것이다. 전통의 바탕에서 얻을 수 있는 저력 위에 지금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힘이 생명력이라 한다면 `광개토대왕비`의 글씨들은 그저 옛날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지향하는 `나아감`이 아닐까.

[유승민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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