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군웅할거' 한국 증권계 인물열전

  • 이진우 
  • 입력 : 2018.04.16 17:14:02   수정 :2018.04.16 19:16:00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242650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왜 저 사람이 저 자리에 앉아 있나.` 빙빙 돌려 말하지만 속내는 `네 까짓 게 뭔데` `나라고 못하란 법 있나`라는 얘기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당파싸움`도 같은 맥락이다. 본질은 요직(要職)을 차지한 상대편을 끌어내리고 내편을 앉히기 위한 투쟁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이런 정서가 발견된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정서는 정계, 관계, 공기업, 교육계, 민간기업 순으로 강하다. 그나마 정도가 덜하다는 민간기업에서도 묘한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요즘은 디지털기술이 적극 활용된다. 신종 투서(投書)인 셈이다.

그래서 한국에선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처신을 잘해야 한다. 방심했다간 구설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시비를 따질 때 흔히 등장하는 게 도덕적 잣대인데, 설사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도덕적으로 꼬투리가 잡히면 버텨내기 쉽지 않다. 어느 선을 넘어가면 모든 해명은 구차한 변명이 된다.

물론 이런 정서를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자격 없는 인물을 걸러내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일벌백계를 통해 사회 전반의 도덕성을 고양시키기도 한다.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대중에게 선사하는 효과도 있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얘기가 다를 수 있다. 심각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조직과 시장의 활력을 확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말썽이 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그 조직의 미래는 뻔하다. 비효율이 일상이 되고, 외부 자극에도 둔감해진다. 한마디로 망조가 들게 된다. 오늘날 일부 정치권, 정부 부처, 대학, 대기업에서 목도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예외도 있기는 하다. 같은 한국 안이지만 증권계에선 이게 잘 안 통한다. 플레이어들이 실력으로 평가받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동네다. 복지부동은커녕 야수적 충동이 꿈틀거린다. 키워드는 사람과 숫자다.

증권계는 유난히 스타 최고경영자(CEO)가 많은 곳이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대표적이다. 2007년 최연소 CEO 타이틀을 얻은 이후 지난달 11번 연임에 성공했다. 김해준 교보증권 사장의 공력도 만만치 않다. 2020년까지 임기가 보장됐으니 그 또한 12년간 CEO 타이틀을 유지하게 된다.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부회장은 9년째 CEO로 재직하며 역사를 새로 만들고 있다.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를 이끄는 최현만 수석부회장은 오너로부터 국내 전권을 위임받은 스타 CEO다.

증권계는 `숫자`가 통하는 곳이다. 실적만 뒷받침되면 장기집권을 하더라도 뒷말이 없다. 나재철 대신증권 사장, 홍원식 이베스트증권 사장이 3번 연임을 기록했고 이진국 하나금융투자 사장, 주익수 하이투자증권 사장, KB증권의 윤경은·전병조 대표 등도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고 보니 업계를 대표하는 금융투자협회장은 금융권에서 유일하게 회원사 선거로 뽑는다. 정부의 입김? 이빨도 안 들어간다.

증권계의 또 다른 자산은 능력 있는 오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에 대해선 긴말이 필요없다. 금융만 파서 재벌 반열에 올랐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대추나무처럼 야무진 2세들이다. 계열사 CEO(유상호 사장)에게 자기 연봉의 4배를 쥐여 주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의 배포는 보통이 아니다. 2세 경영자라지만 업적은 자수성가급이다. 유창수 유진투자증권 부회장과 원종석 신영증권 부회장 역시 실적과 실력을 갖춘 `오너 CEO`로 꼽힌다. 이병철 KTB금융그룹 부회장은 2세 경영인은 아니지만 경영권 분쟁을 극복하고 최대주주로 등극한 경우다.

이쯤 되면 증권계는 가히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다. 다양한 세대와 스타일, 출신 성분의 경영자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파이를 키워가고 있다. 이런 시대가 뜬금없이, 우연히 열린 것은 아닐 것이다.
숱한 시행착오가 밑바탕이 됐다고 봐야 한다.

사실 당사자들로선 살벌하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스트레스가 혁신과 경제의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그게 자본주의다.

[이진우 증권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

박재현의 경제노트 더보기

박재현의 경제노트 썸네일`똘똘한 한 채` 투자 비법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