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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지금 당신이 우울한 '진짜' 이유

  • 입력 : 2018.04.13 15:48:28   수정 :2018.04.13 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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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큰일 났어. 나 요새 우울증인 것 같아. 아침에 일어나면 뭘 해야 될지 막막하고 뭔가를 해도 이까짓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애들을 봐도 기쁘지가 않고, 심지어 나는 이 집에서 단 한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몇 달 전, 나는 울먹이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모른다. 평소에 성격 깔끔하고 사리분별 정확한 셋째의 전화였기에 더 놀랐던 것 같다. 동생은 평생 전업주부로 알뜰살뜰 모아 집도 장만하고 얼마 전 막내까지 대학에 보냈다.
인생의 커다란 숙제를 마무리하고 이제 좀 홀가분해졌을 법한데, 현실은 도리어 그 반대였다. 두 아이가 더 이상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을 처음 맞닥뜨린 동생은 급격한 무기력과 우울함에 빠져들고 있었다. 매 순간 내 시간을 채워주던 아이들이 각자의 인생으로 떠났다는 것. 그것은 내 시간을 더 이상 채워줄 사람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그 시간을 온전히 `나`로만 채워야 된다는 의미다. 시간과 내가 만나 뭘 해야 될지 모를 때, 사람은 급격한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울한 감정을 깊게 느낀다고 해서 곧 우울증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날 나는 동생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있잖아, 그건 우울증이 아니고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너 자신한테 깊이 질문하는 거야. 난 누구지?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되지? 내 50대는 어때야 되지?를 너 자신한테 질문하는 중이라고. 너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면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걱정하겠니. 그러니까 그 질문에 답하고 빠져나오면 돼."

인생의 너무나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약간의 서글픔, 우울, 걱정이 뒤엉킬 수밖에 없다. 피식피식 웃으며 심각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도 슬픔을 느끼듯,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한 걱정과 질문을 할 때도 우리는 슬픔과 우울함을 느낀다. 그럴 때는 나한테 `질문`하는 중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성실하게 답하고 빠져나오면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질문이 아닌 감정에 더 집중한다. 평소와 다른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너무나 쉽게 `우울증`이라는 명함을 달아버린다. 그러면 정말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그것은 남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은퇴와 동시에 급격한 우울증을 호소하는 남자들이 내 주변에도 적지 않다. `아침에 눈뜨면 갈 곳이 없다`는 것만큼 남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없다. 여자들은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누군지를 설정했다면 남자들에게는 그것이 곧 `장소`였다. 내가 매일 가는 곳이 곧 내가 누군지를 말해줬던 것이다. 회사 혹은 조직이라는 장소에 걸맞은 인간으로 나를 만들어가는 데 무려 30년이 걸렸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었을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년 퇴임하고 6개월 정도는 점심과 저녁에 약속이 잡힌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약속도 뜸해지며 시간이 모두 내 것이 되고야 만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는데, 집으로 돌아온 자신을 보는 아내와 아이들의 눈빛마저 싸늘한 것 같다.

그럴 때 남자들은 깊은 비애에 휩싸인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앞으로 아흔 살까지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내 인생은 이게 뭔가. 이 질문 하나하나에 답할 때마다 얼마나 눈물 나도록 슬픈가. 밥벌이 때문에 미뤄두었던 질문들을 꺼내는 과정, 가장이 아닌 온전한 나를 만나는 과정은 그렇게 어둡고 무섭고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당신의 마음이 똑똑해서다. 당신의 마음이 깨어 있기에 다른 길로 가보라고 데려가는 중이다. 그러니 우울한 감정에 너무 끌려가지 말고 나를 사랑하는 증거라고 여기자.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 나면 또 다른 신세계, 새로운 삶이 열린다. 지금의 우울함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나를 향한 질문이자 제2의 인생을 여는 기회다.

[김미경 김미경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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