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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중국이 지배하는 아시아에서 살아가기

  • 노원명 
  • 입력 : 2018.04.11 17:24:50   수정 :2018.04.11 17: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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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태운 특별열차가 베이징역에 도착한 것은 지난달 26일 오후 3시께였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28일 오전 9시에 중국 관영 중앙TV와 신화통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방중 사실을 보도했다. 그사이 중국 언론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는 26일 오후까지 의전차량 사진 등이 뜨곤 했지만 그날 저녁부터 모두 삭제됐다.
김정은은 `중국 실리콘밸리`로 알려진 중관춘을 둘러보는 등 현지인들 눈에 띌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 또한 공식 보도를 통해서만 알려졌다. 김정은 방중을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북한과 중국이 가까운 것 이상으로 매우 닮았다는 사실이다. 인구 1000만 이상 나라 중에 국가 최고지도자의 취임 후 첫 해외 방문, 그리고 혈맹 수뇌의 자국 방문이 이틀 동안 보안에 부쳐질 수 있는 나라가 북한과 중국 말고 또 있겠나. 우리는 중국의 자본주의에 경도된 나머지 중국이 1당 독재국가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중국을 `잘사는 북한`에 비유하면 중국인들은 모욕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사자가 고양이보다 크다고 해서 고양잇과가 아닌 것은 아니다.

지난달 시진핑의 주석 연임 제한이 폐지되자 마틴 울프(파이낸셜타임스 수석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썼다. "공산당 집단지도체제에서 시진핑 1인 독재로의 전환은 1980년대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적으로 발전한 중국이 민주화하리라는 기대를 접게 만든다." 경제 발전이 일정 단계에 도달하면 민주화로 이어진다는 것은 확립된 정치학 이론이다. 일본, 한국, 타이완이 다 그랬다. 그런데 중국은 1당 독재가 1인 독재로 뒷걸음치는 중이며 이렇다 할 저항조차 없다. 중국이 덩치에 걸맞은 책임감과 보편적 가치로 거듭나리라는 기대는 요원해졌다. 이건 정치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하는 불편보다 훨씬 큰 함의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 나라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보편 가치와 등져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1등국이 되면 로마제국 이래 다른 나라들이 선망하지 않는 제도와 문화를 가진 나라가 세계 패권국이 된 첫 사례가 된다.

중국의 부상을 가장 경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기존 패권국과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은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양국 관계를 규정한다. 역사상 이런 충돌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미국과 중국처럼 상이한 문명이 충돌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최근작 `예정된 전쟁`에서 동료 학자 새뮤얼 헌팅턴을 인용해 미국을 인권과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열망이라고 믿는 `선교 국가`로 규정했다. 반면 중국은 자신의 정체성을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규정하며 질서를 정치의 핵심 가치로 본다. 이때 질서의 중심은 물론 중국이다. 개인주의, 자유, 평등, 법의 지배, 민주주의 등은 중국이 볼 때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서양의 가치`일 뿐이다.

중국이 미국의 지위를 빼앗는다 하더라도 미국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여전히 성장하는 경제, 어떤 상황에서도 중국에 크게 뒤지지 않을 군사력은 자유국가인 미국의 기본적 제도와 가치를 보존하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엔 태평양이 가로놓여 있다.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아시아 국가들이다. 중국은 중화적 우월주의가 지배하는 민족국가다. 지난 5000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은 낮다. 중국이 아시아를 지배하게 될 때 주변국들은 중화적 질서에 익숙해져야 한다. 20세기 초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패권국가로 등장하면서 멕시코, 도미니카, 온두라스, 쿠바 등 라틴아메리카 다수 국가에 군대를 보내고 내정에 개입했다. 중국이 그보다 덜할까? 국가의 굴욕은 둘째로 치고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등 우리에게 공기처럼 익숙한 가치들이 위협받을지도 모른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제 손자손녀가 중국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힐러리 손주들이 미국인으로서 감수해야 할 어려움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맞닥뜨릴 리스크가 몇 배는 클 것이다. 우리도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해야 한다. 중국이 완전히 아시아를 지배하기 전에.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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