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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돈 쓰는 맛에 빠진 정부

  • 정혁훈 
  • 입력 : 2018.04.09 17:11:22   수정 :2018.04.09 17: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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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세청은 세금이 너무 잘 걷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세수가 급증하는 건 기업들 실적이 고공행진을 펼치면서 법인세가 확 늘어난 덕분이다. 부가가치세도 효자다. 인터넷 쇼핑몰 거래가 늘어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무자료 거래가 줄어들다 보니 부가세가 늘어나는 것이다.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국세청이 세무조사나 탈세추징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세금이 너무 잘 걷혀서 그런가. 요즘 정부는 국민 세금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정부 예산을 쓰는 데 거침이 없다. 이왕 돈을 쓰는 거면 국민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잘 쓰면 좋으련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같은 돈을 쓰더라도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쪽에 써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뭔가에 쫓기듯 단기적 성과 내기에 몰두한다.

최저임금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세금 3조원을 임금 보전에 쓰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민간 월급을 정부가 국민 혈세로 보전하는 것도 문제지만 내년과 후년엔 어떻게 할지 아무런 대책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본 심보가 더 문제다. 시장 반응이 미적지근하다고 정부 산하기관 직원들을 닦달해 개인별 실적관리까지 해가며 일자리안정기금 신청을 독려하는 것을 보면 안쓰러울 정도다.

추가경정예산 2조9000억원을 쓰겠다는 청년 일자리 대책도 상궤(常軌)를 벗어났다. 정부 예상대로 18만개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가정할 경우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다른 예산까지 포함해 연간 29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중소기업 신입사원 평균 연봉이 2500만원 선인 점을 감안하면 대책이 아니라 `하책(下策)`이다.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써야 하는 이유로 제시한 근거도 설득력이 없다. 정부는 청년층 인구가 2021년까지 증가했다가 이후로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4년간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릿고개를 넘기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 설명이 맞으려면 청년층 인구가 줄어들면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된다는 명제가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명제는 학생 수가 줄어들면 입시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 것과 똑같은 오류다. 고교 졸업자 수는 계속 줄고 있지만 입시문제는 더 꼬여가고 있다. 더구나 청년인구가 줄어도 기업이 만든 일자리가 더 많이 줄면 따질 것도 없다. 보릿고개는 잠시 견디면 수확철이 바로 다가온다. 청년실업 문제를 보릿고개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인구가 줄면 실업문제가 해결된다는 정부 주장은 결국 `근거 없는 기대`에 불과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가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실`을 외면했다고 보는 편이 더 옳다.

엘리트 관료가 즐비한 정부에서 예산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몰라서 그랬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예산 수립에 절대적 영향력을 지닌 청와대와 여당 의견을 정부가 충실히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모든 관심은 6·13 지방선거에 집중돼 있다. 모든 정책적 의사 결정을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만 하려고 한다. 지금 청와대와 여권에 포퓰리즘의 유혹만큼 달콤한 게 있을까.

정치권의 생리는 원래 그렇다 치자. 그러나 정치권 요구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정부의 민낯은 정말 볼썽사납다. 현재 정부 각료 중 유일한 관료 출신인 김동연 경제부총리마저 정치권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의 정부 예산지출 행태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많은 걱정이 나오고 있지만 김 부총리는 애써 외면하는 듯싶다.

한 엘리트 관료의 고백이 심장을 때린다. 예산 문제를 다루기 위해 소집된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정권의 한 핵심 인사가 "이래서 돈 쓰는 맛이라고들 하는군요"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관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그는 현 정권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했다. 부디 그가 잘못 들었기를 바랄 뿐이다.

[정혁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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