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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한류 이야기] 주방에서 행복을 찾은 아들

  • 입력 : 2018.03.30 15:46:19   수정 :2018.03.30 16: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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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주말이면 아이들의 돌잔치가 열려 매주 돌상을 차릴 때가 많다. 고운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차려진 돌상에서 붓을 잡을지 동전을 잡을지 부모들은 각자 아이들이 집었으면 하는 품목을 가장 눈에 띄게 올려놓고 아이가 그것을 잡을 때면 어김없이 환호하고 박수를 친다. 보고만 있어도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하는 이 장면은 24년 전 나 또한 부모의 입장에서 했던 것과 똑같으니 강산을 변하게 할 시간의 힘도 자식에게 편안한 삶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만큼은 바꾸지 못했나 보다.

근래에 외식업을 하는 사람들 모임에 가보면 하나같이 요리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걱정을 한다.
연예인급으로 요리사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하고 초등학교 학생들도 장래 희망으로 요리사를 원한다는데 막상 조리학과를 나온 대학 졸업자 중에는 아예 전공을 바꿔 취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아들아이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내게는 상의도 없이 대학 전공과는 무관하게 덜컥 작은 식당의 셰프로 취직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의 즉각적인 대답은 왜 하필이면 셰프인지,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고 힘은 얼마나 드는지, 노동에 비해 대가는 얼마나 박한지 아느냐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아이의 답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엄마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잖아요. 가난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깨우치는 것이 진정한 삶의 태도라고요." 맞는다. 내가 한 말이…. 그러나 원론적인 얘기가 아닌가, 누가 성경에 적혀 있는 말들이 옳은지 모르겠나, 그렇게 살면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안정된 삶을 누릴 것인가 말이다. `이중적이라고 욕해도 내 아이만큼은 좀 더 편한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 어미로서 당연한 것이지`라며 내 속에 숨어 있는 양심에 외쳐봐도 마음은 편치 않다. 사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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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당시 태어난 아이는 건강했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만 세 살 반이 되도록 입을 열지 않았다. 의사는 만 48개월까지 한 언어를 배우지 못하면 언어를 배우는 뇌 체계가 굳어지게 되니 몇 개월밖에 안 남은 시간에 한 언어로만 집중해 언어 체계를 세워줘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특수학교에서 영어 수화를 배워가며 아이가 목이 말라 `워터`라는 말을 입 밖에 낼 때까지 물도 못 주고 수없이 반복했던 수화 속 기다림의 시간에 나는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미안했다. 이중 언어를 멋지게 해내는 아들을 키운 장한 엄마이고 싶었던 나의 이기심 때문에 목말라 하는 아들을 보며 내가 다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이 아이가 보통으로만 자라나서 보통 학교를 다니고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게만 된다면 바랄 것이 없었다. 건강하게만 커줘 세상 기준에 있어 조금 모자라더라도 자신만의 행복을 느끼면 된다고 여겼다. 아이가 특수학교에서 일반 학교로 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얼마나 고맙고 대견했는지, 또 무리 없이 대학을 가주면서 나는 말 못하던 아이를 앞에 두고 신에게 빌었던 겸허한 소원과 소박한 감사를 잊고 말았다.


학교에서 어눌한 말투에 놀림을 받던 아이가 엄마가 일하는 식당 주방에서 셰프 형들과 아주머니들이 예뻐하는 가운데 하는 설거지는 참된 놀이였고 콩 껍질을 까고 칭찬을 받는 것이 가장 큰 자존감 수업이었기에 지금도 이 아이는 주방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아직도 떠듬거리는 말로 자신은 한식 셰프가 되겠다는 이 아이에게 과연 나는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셈이 어두워 식당을 운영하며 모아둔 재산이 없는 나는 아이에게 물려 줄 유형 유산이 없다. 그러나 아이가 크면서 행복했던 주방의 추억이 있다면, 손 많이 가고 만들기 힘든 한식에 대한 애정이 아이 마음 안에 싹텄다면 어려운 길일지라도 이 아이는 행복하게 요리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힘이 있으리라 믿는다. 자신이 행복한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은 또한 남들에게도 행복을 전파할 수 있다고 믿기에 못난 엄마의 이기심을 놓아본다.

[한윤주 콩두 푸드&컬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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