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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필의 인생낚시터]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 입력 : 2018.03.28 17:04:10   수정 :2018.03.29 11: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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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학교 교장 시절 수지의 동천동에 살았다. 인근의 계획도시 분당과 달리 수지는 난개발의 전형이었다. `우리 동네`라는 말이 무색하게 밤에 잠이나 자는 곳이었다. 동천동과 함께 `머내`라는 옛 지역공동체를 구성해온 고기동도 한때 계곡 물이 좋은 유원지였으나 무분별한 개발로 전원주택과 식당들이 들어서며 교통난이 심해졌다.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2018년 이곳에 `뭔 일`이 생겼다. 봄볕이 좋은 3월 24일 토요일 오전 고기초등학교에 유모차를 탄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주민 200여 명이 모였다. 직접 그린 엉성한 태극기를 든 아이,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소녀, 무명 두루마기 차림의 아저씨 등 차림새도 제각각이었다. 이 동네의 3·1운동을 주민 스스로 기념하는`3·29머내만세운동 99주년 걷기대회`가 열린 것이다.

이들은 구전과 기록을 바탕으로 고증해낸 99년 전 만세행렬 루트를 따라 낙생저수지로 향했다. 만세를 크게 외치다가도 두꺼비 서식지 앞에선 소리를 죽였다. 잠시 멈춘 저수지 제방에선 드론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행진해 오룡뜰에서 가래떡을 나눠 먹고 머내 주막거리까지 내처 걸었다. 3시간 동안 모두 5㎞를 걸은 셈이다. 그사이 행렬은 차츰 불어나 300여 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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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태극기와 `조선은 독립국` `우리는 자주민` 현수막을 걸고 시작한 마무리 집회에서 머내만세운동 주역의 손자 한 분이 인상적인 말씀을 남겼다. "임진왜란 때나, 독립만세운동 때나 늘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나라로부터 별 혜택을 입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 일어섰다. 여기 모인 학생, 시민들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일어서라"고. 그런데 이날 행사의 절정은 참여시민들이 함께한 상황극이었다. 일제 헌병의 총탄에 쓰러졌던 시위대가 마을합창단의 `그날이 오면` 노래에 맞춰 일어서는 장면은 가슴 뭉클했다.

이들은 왜 최근 한두 해 사이에 `서먹해진` 태극기를 며칠 밤을 새워가며 그리고, 동네 중·고교 역사 선생님들은 교재까지 만들어 `머내만세운동`에 관한 수업을 했을까. 또 몇 달에 걸쳐 일제의 3·1운동 판결문을 찾아내고, 시위 주역의 후손들을 찾아 증언을 듣는 수고를 했을까.

이 지역 역사지리공부모임 `머내여지도`의 김창희 씨는 이렇게 말했다. "마을의 중요한 역사를 복원하고, 그것을 함께 기념하는 과정을 통해 원주민과 전입 주민들 간에 유대감이 싹틀 수 있다고 봤다. `그때` `그 길`을 걸으면서 역사가 `지금` `이곳`에 살아 있음을 가슴으로 느끼고, 나아가 지금 우리가 마을의 주인이자 나라의 주인으로 제대로 살고 있는지도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동안 3·1운동이라고 하면 33인 민족대표의 무기력한 모습과 함께 유관순 열사가 떠오르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날 행사를 통해 많은 것을 새롭게 알았다. 우선 민족대표들이 만세운동의 계기를 만들긴 했지만 그 운동의 진정한 주역은 전국 각지의 민중이었다는 사실. 만세운동은 3월 1일 이후 두세 달 동안 전국 각지로 들불처럼 번져갔고, 그 유형도 다양했다. 서울 유학생이 고향에 내려가 불을 지핀 곳도 있고, 머내처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해 만들어낸 곳도 있으며, 장날에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곳도 있다.


또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을 선언하노라"고 밝힌 독립선언문의 의미다. 조선이 독립국임을 밝힌 것은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4000년 이상 왕의 신민으로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신이 주인임을 선언한 데 주목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고 그 정신이 `대한민국`으로 이어졌으며, 4·19혁명, 6월 민중항쟁, 촛불혁명으로 다시 살아났다. 그러기에 3·1운동이야말로 한민족의 첫 시민혁명이 아닌가.

내년은 3·1운동의 100주년이다. 이 시민혁명을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기념해야 할까.

[정광필 50+인생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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