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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과 글씨 이야기] 봄다운 봄에 필요한 것

  • 입력 : 2018.03.16 15:58:02   수정 :2018.03.16 17: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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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통하는 상대와 나누는 대화는 생각만 해도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앉았던 자리 아래로 까르르 터뜨린 웃음들을 꽃잎처럼 남길 수 있는 만남을 마다할 사람도 없으리라. 요즘처럼 봄기운이 가득한 햇살 아래 맑은 차 한 잔을 놓고 수다를 떨어본 이라면 누구나 여기에 동의할 것이다.

대화는 마주 앉아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일방적인 의사 전달은 대화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화 가운데 재미로 치자면 `문답`이 으뜸이다. 이 대화 방법이라면 고대 중국의 제자백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을 떠올리게 되고, 이런저런 전설들의 주된 내용이기도 하다. 이달에 소재로 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이 그림은 작자를 알 수 없으나 조선의 임금 숙종이 구경했던 작품이다. 두 사람이 물가에 앉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인데, 한 사람은 낚싯대와 망태를 갖고 있는 어부(漁夫), 또 한 사람은 허리춤에 도끼를 차고 있는 나무꾼(樵夫)이다.

이 두 사람은 동양문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세속과 거리를 둔 이들로서 자연과 동화하는 경지에 이른 이들로 일컬어진다. 물론 이들 캐릭터를 만든 이들은 세속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워지고자 했던 지식인들이었다. 특히 개인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사람 본연의 자유에 관해 관심이 컸던 시인과 학자들이 이 두 캐릭터를 선명한 이미지로 만들어 냈다.

"쩡쩡 도끼질 소리뿐, 장작을 모아둔 곳은 알 수 없어라"는 송나라 시인 육유(陸游)가 초부를 읊은 구절이고, 당나라 문인 유종원(柳宗元)은 "하늘가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을 돌아보며, 바위에 무심히 앉아 눈은 구름을 쫓을 뿐"이라며 어부를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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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세속의 욕망과 거리를 둔 현자의 상이었다. 한편 세상을 통찰하려는 이들에게 이 두 인물도 모티프를 제공했는데, 송나라 학자 소옹(邵雍)은 이들을 내세워 자신의 우주론을 펴기도 했고 이로 인해 그의 철학을 높이 여긴 이들에게 어부와 나무꾼의 대화 장면은 남다르게 여겨지기도 했다. 동양 문예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동파(東坡) 소식(蘇軾)도 `어초한화록(漁樵閑話錄)`이라는 제목의 글을 남겨 어초(漁樵)의 대화가 후대의 교양인들 사이에서 중요한 소재가 되도록 만들었다.

조선의 임금 숙종은 이 그림을 구경하고 1715년 가을에 감상시를 그림에 적어놓게 했다. 이는 역대 제왕들이 서화 작품을 감상하고 흔적을 남겼던 전례대로 한, 흔한 조치다. 그런데 이 그림에 남긴 시가 이렇다.

"이름 모를 두 사람, 한 사람은 도끼를 차고 한 이는 잉어를 들었네. 술에 얼근해진 얼굴로 어인 일로 물가에 왔을까? 아마도 각자 이해(利害)나 얘기할 뿐이겠지."

1715년 무렵은 조선 숙종이 즉위한 지 40년을 넘겼던 시점이다. 그의 치세 동안 조선은 병자호란의 충격에서 벗어나던 시기였으나 정치적으로는 서인과 남인 사이의 각축, 다시 서인이 나뉜 노론과 소론의 경쟁이 심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이 그림을 감상할 시점에는 송시열의 노론과 윤증의 소론 사이 긴장이 절정에 이르렀었고, 결국 이듬해에 숙종은 노론 손을 들어주는 처분을 내림으로써 상황을 정리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고 숙종의 시를 다시 보자. 숙종에게 저 두 사람의 대화는 세상 이치에 대한 `문답`이 아니라 양대 정파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었다.
왕의 권위를 높이려 애쓰던 임금 숙종은 어쩌면 이 그림에 남긴 시 한 수로써 자신의 신하들에게 경고장을 던지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 기세등등했던 겨울도 천지자연의 운행이라는 이치에 하릴없이 물러가고 봄이 왔다. 본래 어부와 초부가 나눈 이야기도 그러한 거대담론이라고 했지만 우리에게 현실, 찾아온 봄도 매우 소중하다. 봄은 계절일 뿐이고 해마다 돌아오지만 지혜로운 문답과 해결을 위한 대화로써 봄다워진 봄이 진정 맞고 싶은 봄이다.

[유승민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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