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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미래] 꽃 바보

  • 입력 : 2018.03.09 16:03:54   수정 :2018.03.09 1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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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봄이다. 소리치고 들이치고 부딪치고 몰아치는 사건들의 연쇄가 계절을 잊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일에 무심하다. 아무도 꽃을 말하지 않아도 때맞추어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
대구의 폭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섬진강 매화가 길을 열었다. 암향부동(暗香浮動), 눈 속을 떠도는 은근한 향기는 본디 매화의 일이다. 곧이어 산수유, 진달래, 철쭉 등 이 꽃이 열리고 저 꽃이 무성해지리라. `당나라 뒷골목을 읊다`에 따르면, 당나라 사람들은 `꽃 바보`였다. 부호의 집에는 반드시 정원이 있었고, 평범한 백성도 작은 화분이나 사발에 몇 그루 꽃을 길렀다. 그들은 꽃 없는 봄을 견디지 못했다. 피란길에 오른 두보가 성도에 초당을 지은 후 가장 먼저 부탁한 것이 각종 꽃나무들이었고, 양국충은 상자에 진귀한 꽃을 심고 바퀴를 매달아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감상했으며, 측천무후는 `꽃의 신`에게 교지를 내려서 갖가지 꽃을 한꺼번에 피우도록 명하기도 했다.

과거에 급제하면 꽃 찾는 사내(探花郞)가 되어 노니 책만 읽을 줄 알고 꽃을 감상할 줄 모르면 풍류를 잊은 얼간이였다. 꾀꼬리 울고 나비 날면 여인들이 꽃을 머리에 꽂아 다투니(鬪花) 이로써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할 줄 알았다. 모란이 피고 지는 것은 고작 스무 날 남짓, 남녀가 함께 어울려 이름난 곳으로 "미친 듯 수레와 말을 몰아 꽃을 즐기지 못함을 수치로 여겼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읊었다. "봄밤의 일각은 천금에 값한다네. 꽃향기는 맑고 달빛은 은은하네." 봄에는 누구나 현세주의자가 된다. 공기는 맑고, 향기는 달콤하며, 연인은 곁에서 재잘댄다. 아아, 이 시절이 한없이 길기만을 바랄 뿐 바라는 바가 어찌 더 있으랴. 명나라 원굉도를 좇는다면, 숨은 선비는 매화를 따서 목욕을 즐기고 단장한 여인은 작약을 꺾어 피부에 향기가 깃들기를 구해야 하리라.

`꽃의 소리`를 들어 자연의 도를 깨닫겠다는 어쭙잖은 마음은 필요 없다. "붉은 꽃은 한들한들 말 건네는 듯한데, 하얀 꽃은 달빛에 비치니 다만 향기만 맡는구나(紅艶뇨 煙疑欲語, 素華映月只聞香)." 당나라 은문규의 시구다. 이것이 봄을 맞는 마음이다. 봄날은 짧게 간다. 붉고 흰 모란이 눈앞에 찬란하다. 생각할 틈이 없다. `있는 그대로` 즐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매화가 피었다.
산수유가 맺혔다. 꽃들이 시선을 사로잡고 마음을 빼앗는다. 연일 언론을 불태우는 번잡한 세사를 빌미로, 이 봄의 황홀을 놓치기에는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나 아깝다. 주말이다. "꽃 난간 옆에 이부자리를 깔았던" 시인 설도처럼, 남으로 내려가 이 봄을 기꺼이 앓아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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