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오피니언

[세상읽기] 스피넘랜드법의 교훈

  • 입력 : 2018.03.07 17:38:53   수정 :2018.03.07 17:42:12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151549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일자리 정책이 최우선 과제라면서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성과가 초라하다. 지난해 실업자 수가 102만8000명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고, 청년실업률도 최고 수준(9.9%)을 기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제조업과 건설업 일자리는 늘었지만 서비스업,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일자리는 대폭 줄었다. 서비스업 등에서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16.4%)이 주된 요인이라고 해석된다.
매경이코노미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60%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고,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3월 경기전망조사`에서도 경영상 최대 애로사항으로 인건비 상승(59.7%)이 꼽혔다.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 정부에 추가 인상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놓았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주의 부담을 덜기 위해 3조원의 일자리안정자금을 조성해 지원하기로 했지만, 아직 신청률이 저조하다.

대부분의 정책이 그렇듯 문재인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재정 지원 정책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280만명이 넘는 근로자들의 삶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은 선의로 해석해야 마땅할 것이다. 또 이 정책은 문재인정부의 이념인 진보의 이상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자유보다 평등의 가치를 앞세우는 진보 이념에서는 상위계층의 세금으로 하위계층 임금을 올려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문제는 어떤 정책이 선의에서 출발했다든가 이념에 충실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사에서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스피넘랜드법이다.

산업혁명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던 1795년 영국 버크셔의 정책결정자들은 스피넘랜드에서 회합을 갖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빵 한 덩어리 가격이 1실링일 때 일하는 빈민들은 모두 본인 몫의 생활비로 주당 3실링을 보장받아야 하며, 이는 그 자신이나 가족이 직접 노동을 하여 조달하든가 노동을 하지 못할 경우 수당에 의해서라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용어로 얘기하자면 최저임금제를 실시하고 차액을 일자리안정자금으로 지원하는 한편,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 법의 효과는 어땠을까. 고용주는 최저임금 이하로 임금을 주면서 부족액은 정부 보조금으로 메우려 했다. 노동자는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똑같은 수입을 얻게 돼 노동생산성이 급속히 저하됐다. 생산성이 떨어지자 고용주는 다시 임금을 올리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스피넘랜드법은 인기가 높았다. 고용주들은 임금을 깎을 수 있으니 좋아했고, 노동자들은 적어도 최저임금이 보장돼 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전환`을 쓴 카를 폴라니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그 결과는 소름 끼칠 만한 것이었다`. 생산성이 하락한 것은 물론 근로자의 자긍심이 한심한 수준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임금을 세금으로 보조하게 되면서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에서 고착돼버렸다는 점이다.

스피넘랜드법은 선의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법이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농민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이 법은 또 이념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법이었다. 당시 지도층은 산업혁명과 자유시장 경제라는 큰 물결을 알아채지 못하고 중세봉건 농촌경제야말로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체제라는 이념을 갖고 있었다.
선의에 기초하고 이념에 철저한 정책은 그러나 처절한 실패로 귀결됐다.

선의와 이념이 정책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선의와 이념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결과를 깊이 고민하지 않게 만들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면 큰 문제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선한 의도가 아니라 좋은 결과에, 맹목적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 달려 있는 것이다.

[박수영 아주대 교수·생활정책연구소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

박재현의 경제노트 더보기

박재현의 경제노트 썸네일사회 초년생 1억 만들기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