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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GM이 전기차를 한국서 생산한다면

  • 장박원 
  • 입력 : 2018.03.05 17:24:07   수정 :2018.03.05 17: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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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말 자동차 산업을 취재하며 새로 출범한 GM대우(2011년 한국GM으로 개명)를 찾았을 때 사무실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직원들은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어색했다. 안정감이 없었고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다.
그들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무너지면서 대우차도 1700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해야 했다. 함께 일하던 선배와 후배, 동료가 무더기로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헐값 매각 논란 속에 GM대우로 다시 출발했지만 `살아 남아 있는 자의 슬픔`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5년 전인 1997년 첨단 설비를 갖춘 군산공장이 준공됐을 때만 해도 이런 불운이 닥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행히 GM대우는 빠른 속도로 부활했다. 여기에는 준중형 `라세티`를 생산했던 군산공장 역할도 컸다. 연간 생산 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하며 대우차 시절을 뛰어넘는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GM 본사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GM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이어 수익성 위주로 세계 전략을 바꿨는데 그 불똥이 한국GM에도 튀었다. 2013년 유럽 쉐보레 브랜드 철수가 그것이다. 이는 2014년 이후 약 3조원의 누적 적자와 군산공장 폐쇄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다. 여기에 2대 주주인 KDB산업은행의 무책임과 한국GM 경영진의 무능력, 회사가 적자의 늪에 빠졌는데도 높은 임금과 성과급을 챙긴 노조의 이기심이 더해지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어쨌든 한국GM 부실의 1차 책임은 미국 본사에 있다. 한국에서 철수할 의도가 없었다면 유럽에서 쉐보레를 철수할 때 후속 대책을 세웠어야 마땅했다. 이제 와서 우리 정부에 손을 벌린 GM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지원을 위한 세 가지 원칙 중에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을 가장 먼저 거론한 이유이기도 하다. GM은 정부 지원과 노조의 고통 분담이 확정되면 신차 배정 등 구체적인 정상화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태도로는 믿음을 줄 수 없다. 최소한 핵심적인 사업 하나라도 약속해야 한다. 예컨대 GM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밀고 있는 전기차 `볼트` 후속 모델을 한국에서 생산하는 방안은 좋은 아이디어다.

연간 판매량이 몇만 대밖에 안되는 전기차를 배정하는 게 한국GM 정상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GM이 한국 철수 걱정을 잠재우면서 한국 정부 지원과 노조의 고통 분담을 이끌어내는 방법 중에 이것만큼 유용한 게 없다. 이는 GM의 장기적인 전략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볼트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LG화학이 공급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은 전기차 주요 부품의 공급 체계를 잘 갖추고 있는 국가에 속한다. 한국에서 만든 프리미엄 전기차를 중국과 아시아 전역에 수출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물론 정부가 GM의 한 가지 약속만 믿고 지원을 결정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한국GM이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실사해야 하는 이유다.

이번 사태를 빨리 극복하려면 한국GM 노조의 역할도 중요하다. 회사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기득권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버티다가는 `정리해고`라는 또 한 번의 아픔을 겪을 수 있다. 외부세력과 결탁해 정치 이슈로 몰고 가는 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며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지 모른다. 지난주 2500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는데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은 죽어야 살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한 때다. 노조도 책임을 인정하고 회사와 협력해 정상화의 길을 찾는다면 한국 자동차 산업의 노사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 집에 불이 났으면 책임을 따지기 전에 먼저 힘을 합쳐 불을 끄고 봐야 한다.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끄는 시늉만 한다거나 내 짐부터 빼겠다고 너도나도 불 속에 뛰어드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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