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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회일반

[김세형 칼럼] 건국100주년논쟁 누가 옳은가

  • 김세형 
  • 입력 : 2018.03.03 06:01:04   수정 :2018.03.13 10: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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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박유철 광복회장 등의 독립선언서 낭독이 끝나자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세형 칼럼]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장준하가 학도병으로 끌려가 만주 일본군 부대에 배속돼 있다가 탈출해 장장 6000km를 걸어 임시정부를 찾아 충칭까지 여정을 그린 내용이 <돌베개>란 책에 그려져 있다. 장준하는 일본군의 눈을 피해 부산~신의주간 거리의 일곱배나 되는 거리를 무려 7개월간 걸어서 마침내 임정의 품에 안기는데 성공했다. 그때가 1945년 1월 31일이었다. 김구선생을 만난 기쁨도 잠시,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제각각 당(黨)을 하나씩 꿰차고 사분오열돼 있는 현실에 너무나 기가 막혔다.
오죽했으면 장준하는 여기를 떠나 일본군으로 되돌아 간다면 항공대에 자원입대하여 제일 먼저 임정 청사부터 폭파해버리겠다는 저주를 퍼붓고 시안으로 떠나간다. 광복군이라는 학도병은 50명이 고작이었다. 해방을 몇달 앞둔 임시정부의 몰골이 고작 그랬다. 역사적으로 임시정부란 명칭으로 그럴듯한 전례는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패망하자 국방차관이었던 드골이 1941년 영국에 망명정부를 차린 것이다. 프랑스 본국에는 히틀러의 꼭두각시를 하는 페텡원수의 비시정권이 있었으나 드골은 런던을 거쳐 알제리에 본거지를 틀고 군대를 끌어모아 연합군과 전쟁을 함께 치렀다. 그리하여 1945년 해방후엔 당당히 귀국해 정부를 계승하고 전승국의 일원으로 유엔안보리 상임위 5개국가운데 한자리를 당당하게 꿰찼던 것이다. 미국이 1776년 7월4일 독립을 선포하고, 1789년 제헌의회를 출범시켰지만 건국일은 제헌의회에 앞선 1776년으로 정한 사례에 빗대 한국도 1948년 8월15일 정부수립일이 아닌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을 하자는 주장은 어찌 보이는가. 문재인대통령은 3.1절 행사에서 그런 셈법으로 내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하겠다고 하여 좌우파가 가파르게 대치하는 상황이다.

프랑스의 임시정부, 제헌의회 이전의 미국과 비교하면 상해 임시정부는 말이 안되게 기운다. 프랑스 임시정부는 미국 영국등 연합국이 정부(국가)로 인정해줬다. 드골의 신분은 합법적인 프랑스 정부의 내각의 일원이었기에 국민의 신임이 전제돼 있다.

국가의 3대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를 본다면 미국은 독립선언당시 이미 영국과 전쟁에서 승리하여 우리와 비교할 필요가 없고 프랑스 드골은 상해임시정부와 비슷하나 국제적 인정 측면에서 김구와 다르다. 장준하가 현장에서 목격했듯이 그것은 정부형태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구, 장준하는 45년 11월 23일 개인자격으로 귀국할수 밖에 없었고 , 정부수립과정에서 임시정부에 법통이 있다는 주장을 할 형편도 아니었다. 물론 상해임시정부를 김구 등이 건국이라고부른 적도 없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1945년 8월15일 광복후 남북으로 갈려 좌우대립속에 3년간을 허송하고 UN신탁통치하에 선거로 단일 정부를 수립하고자 했으나 북의 김일성집단이 불응, 남한만의 선거로 정부수립을 한게 1948년 8월15일이다. UN과 세계가 인정하는 유일한 합법정부가 됐던 것이다. 김일성은 9월9월 북한만의 공산정권을 수립했다.

그후 역대정권은 쭈욱 정부수립이란 용어를 주로 썼다. 그러다 2006년 이영훈교수가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칼럼을 동아일보에 게재하면서 건국절 논쟁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그후 뉴라이트 보수계열은 1948년 정부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원년으로 , 진보세력은 1919년 3.1운동에 이어 4월에 선포된 임시정부를 건국일로 보자는 역사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문대통령이 마침 내년 3.1절을 건국100주년 기념일로 추진하고 있어 보수진영의 1948년은 no!로 쐐기를 박았다고 언론은 쓰고 있다. 이제 역사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양진영은 뭘로 싸우는가. 보수진영은 1919년은 국가의 3대요건도 안 갖춰졌고 그냥 세계에서 아무도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해주지 않았는데 무슨 건국이냔 것이다. 이승만이 헌법전문에 임시정부의 정신을 넣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냐고 말한다.(87년 개헌시엔 김준엽의 주장으로 `임시정부 법통`)

진보세력의 1919년 건국론은 상해임시정부 선포시 조선시대 왕권과 결별한 민(民)이 나라의 주인임을 명시한 헌법의 대강, 국호는 대한민국, 애국가도 만들었으므로 현재의 대한민국 뿌리라고 주장한다.

둘의 차이는 1948년을 건국으로 할 경우 북한정권은 한반도에서 존재가 없는, 흔히 말하는 괴뢰정권에 불과하고 건국의 아버지는 이승만을 비롯하 기성세력이 된다. 1919년 건국설로 하면 남북을 아우르고 독립운동파들을 포용한다.

그런데 1919년을 건국으로 하면 그 임시정부는 국민의 위임을 받은 정통, 합법성이 있는 정부냐는 물음에 근거가 허약하다.

그보다 더 미묘한 것은 임시정부 소재지가 중국(상해)이라는 점이다. 이는 바로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라고 했던 말을 상기시킨다. 문대통령은 설날 중국인들에게 조문인사를 올려 친중국이란 말이 많았다.

정통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무엇일까. 국내 최고 실력자인 K교수는 "우선 정통사학자들은 건국(建國)이란 용어를 싫어하며 기피한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도 그런 용어를 잘 안쓴다고 한다. 그이유는 `건국`하면 역사전체를 아울러 하나의 국가 밖에 없는것 처럼 비쳐, 한국사로 치면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시대, 고려, 조선시대를 모조리 부인하는 격이 된다는 것이다. 즉 역사의 부정이다. 그래서 고려, 조선수립때는 건국 대신 개국(開國)이란 용어를 써 개국공신 같은 말이 파생했다고 한다.

그러니 가장 좋은 건국일은 역사속 국가들을 모두 아우르는 개천절을 쓰는게 최상이라고 한다. 얼마나 좋은 대안인가!

우리는 해방후 건국 없이도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 민주화의 모범국가로 우뚝 솟아 오르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누가 주류였는가. 국민 모두였다. 재벌 패밀리도 이병철 이병철 신격호등도 작은 장사치에서 출발했지 왕후장상은 아니었다.

3.1운동, 촛불세력만을 주류로 삼겠다는 발상은 국민통합의 반대방향이다.

지금 한국은 경제침체가 저출산을 부르고 그것이 국운을 위태롭게 하며 설상가상 북핵문제 미해결로 아주 어려운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런 문제 하나를 해결하려 국력을 총력 경주해도 모자랄 판이다. 이런 판국에 건국절 논쟁으로 좌우가 갈려 배척하고 갈등하면 누구 좋은 일 시키겠는가. 이조시대 당파싸움, 1945~48년사이 좌우분열로 망조가 들었던 과오를 되풀이 하여 국력을 쇠잔케 하는 것은 후손과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1919년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처음썼고 애국가도 만들고 했으니 건국이라 해도 틀린건 아니다. 그러나 건국절을 세워놓으면 그것이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워야 한다.
프랑스의 드골 이상의 요건을 갖춰야 이야기가 된다. 그러러면 임시정부의 국민대표성이 입증되고 업적이 자랑스러워야지 창피한 수준이어선 한국 망신이다. 보수 진보 서로가 이쪽이 건국시점이라 우길뿐 아무도 임시정부 업적을 조명 않는데 그걸 검증하는게 우선이라고 본다. 그때까지는 건국100주년 논의를 중단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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