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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베를린 선언과 베이징 합의

  • 윤경호 
  • 입력 : 2018.02.28 17:19:20   수정 :2018.02.28 17: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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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 간 접촉은 의외로 이뤄졌다. 깜짝쇼에 가까울 때가 많았다. 북한의 도발 강도가 높아지면 오히려 만났다. 북의 벼랑 끝 전술을 미국은 받아들였다.
앞으로 이뤄질 북·미 간 대화도 그 틀 안에서 재연될 수 있다. 김여정과 김영철로 이어지는 두 차례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남을 마쳤으니 이제 이른바 평창 이후 국면으로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미 대화를 올바른 조건에서만 하겠다고 못 박았다. 북·미 간 대화가 물살을 타려 할 때 미 국무부 대북 대화의 창구인 조지프 윤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은퇴 소식이 들려왔다. 대화파인 그의 퇴장 후 강경파가 자리를 메울 것으로 관측된다.

우리가 북·미 대화에 주목해야 하는 건 북·미 대화가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 만남은 그에 앞선 북·미 간 막후 접촉과 공개 합의가 터를 닦아줘 가능했다. 두 번의 정상회담 전후 일지를 살펴보면 쉽게 읽힌다.

북핵이 불거진 뒤 북·미 간 외교 밀당의 시작은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다. 북한의 핵개발 포기, 북·미 수교, 대북 에너지 공급을 주 내용으로 한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할 땐 군사적 충돌 위기가 높았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을 다 짜놓았다. 그런 상황에서 대화로 타협했으니 극적이다. 하지만 제네바 합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합의한 경수로 건설 지원과 북·미 수교를 위한 평화협정 체결을 의회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이 거부해버렸다. 미국의 약속 이행이 늦어지자 북한은 원자로를 다시 가동하며 핵개발에 나섰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은 장거리미사일 대포동 1호를 쏘아올렸다. 압박과 제재로 맞서던 클린턴 행정부는 페리 프로세스로 불리는 포괄적 대북 정책으로 돌아섰다. 1999년 5월 윌리엄 페리 대북조정관에 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동했다. 그해 9월 17일 클린턴은 대북 경제제재 일부를 해제했고, 9월 24일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를 선언했다. 북·미 간 이런 주고받기 위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월 남북정상회담을 공개 제안했고 3월 대북 경제 지원을 포함한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다. 그해 6월 1차 남북정상회담은 미국과 한국의 이렇게 촘촘한 토대 다지기 위에 성사됐던 것이다.

2003년 1월 북한은 NPT 탈퇴를 다시 선언했다. 200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2005년 2월엔 6자회담 불참 선언이 나왔고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에 맞서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실험을 했다. 4년여 가열차게 진행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역설적으로 미국과 북한 간 막후 접촉을 더 강하게 유인했다. 이번엔 북·미 간 일대일 협상보다는 6자회담의 틀을 활용했다. 그렇게 이뤄진 것이 2007년 2월 13일 베이징 합의였다.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 대신 5개국으로부터 중유 등 에너지를 지원받는 내용이다. 북한을 옥죄던 BDA 자금 동결도 해제했다. 이를 토대로 2007년 6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했고 그해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역사를 복기해보면 남북정상회담은 북한 핵문제 해결에 기여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전 북·미 관계의 향배가 더 중요했다. 북한의 도발이 잦을수록, 미국의 제재 강도가 높을수록 막후에서 북·미 간 대화는 되레 뜨겁게 이어졌다. 북한을 어르고 달래든 당근을 쓰든 채찍을 쓰든 무언가 끌어냈다.

결론은 북·미 관계가 먼저 잘 풀려야 남북 관계 개선에 속도가 붙는다는 점이다.
1차 남북정상회담 전 베를린 선언과 2차 남북정상회담 전 이뤄진 베이징 합의 같은 앞서 진행되는 토대 닦기와 여건 만들기가 절실하다. 북·미 대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는 의미다. 막후에서의 접촉을 중계방송하듯 알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어디에선가 공개하지 않는 북·미 간 실무자 만남이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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