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괴물과 그 조력자들

  • 심윤희 
  • 입력 : 2018.02.26 17:17:49   수정 :2018.02.26 17:33:10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131734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윤택의 추잡한 행각은 연극으로 치면 `저질 엽기 호러물`이다. 그의 악마본색이 하나둘 까발려지며 모두가 경악하고 있을 때 나의 분노 게이지를 최대로 상승시킨 장면이 있었다. 연희단거리패 단원이었던 홍선주 씨가 방송에서 한 폭로였다. "그 여자 선배는 후배를 초이스하고 안마를 권유했다.
과일이 든 쟁반을 주면서 이윤택 방에 가서 안마하라고 했다. 내가 거부하자 가슴팍을 치면서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고 말했다." `더러운 욕망`의 실현을 도운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를 지목한 말이었다. 괴물은 절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괴물이 서식하려면 복종하는 조력자와 진실에 눈을 감는 방관자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족들의 활약이 커질수록 괴물의 힘과 잔혹함은 배가된다. 히틀러에게 헌신한 조력자들 역시 군주가 명령한 바를 수행했고 때로는 그 이상을 해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어마어마한 성폭행 사건이 18년간 `관습`으로 정착되며 밖으로 터져나오지 않은 것은 이윤택의 만행을 알면서도 그를 왕이나 신처럼 떠받든 조력자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여배우들은 이들 조력자의 지시에 따라 `이윤택 왕국`에서 밥 시중, 목욕 시중, 안마 시중을 들었다. 그는 연극계의 대부였고 존경받는 스승이었고, 배역을 주거나 빼앗을 수 있는 절대권력을 갖고 있었다. 어린 배우들이 저항하기에는 너무 높은 벽이었다. 물론 동료 배우들 중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저항한 이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권력자의 폭압이 강해질수록, 불복종에 대한 징계가 높아질수록 조직원들은 동조하는 조력자와 저항을 포기하고 침묵하는 방관자로 양분돼버렸다. 사건이 터지자 조력자들은 사과 기자회견을 위한 리허설을 준비하고 이씨에게 불쌍한 표정을 지으라며 연기 훈수까지 뒀다. 이들은 사과마저 삼류 연극하듯 하며 침몰하는 왕국을 사수하려고 몸부림쳤다. 그들의 연극에 울고 웃었던 관객들을 끝까지 배신한 것이다.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을 통해 성추문이 공론화된 고은 시인. 그의 습관적인 성추행에서도 조력자, 방관자들의 역할이 빛났다. 그의 나쁜 손은 문학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노벨상 수상자 후보, 원로라는 권위는 `침묵의 카르텔`을 만들었다. 그의 조력자들은 되레 최 시인을 인신공격했고, 한국작가회의는 사건이 공론화된 지 2주가 넘어서야 징계 시늉만 했다. 배우 조민기의 성추행을 폭로한 신인 배우는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며 방관자들의 묵인을 가슴 아파했다. 누군가 용기를 내 문제 제기를 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고은으로 시작된 문화계 미투 쓰나미는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연극 연출가 오태석, 뮤지컬 연출가 윤호진, 사진작가 배병우, 배우 조재현, 배우 한명구 등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 하나같이 원로, 중진이라는 타이틀에 크든 작든 권력을 갖고 있다. 과연 문화계만 덜 문명화돼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문화계의 폭로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성추행·성폭행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조직 내 강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약자를 억압하는 게 성추행의 본질이다. 성추행은 한국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 남성중심주의, 위계질서의 산물이다. 권력이 존재하는 어느 곳에든 추악한 `이윤택들`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또한 이런 `이윤택들` 주변에는 도덕적 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 권력 편에 서거나 침묵하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통해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지적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도는 악의 해결책으로 도덕적 영웅주의를 제안했다. 그는 자신의 책 `루시퍼 이펙트`에서 "잘못된 상황과 시스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종하고 순응하고 악의 유혹에 굴복할 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에 저항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했다.
괴물의 준동을 막으려면 권력자의 부당한 명령에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필요하다.

어렵사리 시작된 미투운동이 사회를 바꾸려면 진영논리를 개입시키면서 초점을 흐려선 안된다. 용기 있는 고백이 헛되지 않으려면 성추행을 했다가는 권력을 송두리째 잃고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이 슬그머니 부활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우리 모두가 조력자, 방관자가 되는 것이다.

[심윤희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

박재현의 경제노트 더보기

박재현의 경제노트 썸네일사회 초년생 1억 만들기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