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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사형선고의 고충

  • 입력 : 2018.02.23 15:43:34   수정 :2018.02.23 16: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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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어느 엽기적 살인범에 대하여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사형제도가 법적으로는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1997년 사형 집행을 한 이래 20년이 넘도록 사형수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은 사형제도가 현실적으로는 운영되지 않는 나라, 또는 사실상 폐지된 나라로 분류되어 있다.
지금 국회 개헌특위에서는 사형 선고를 폐지하는 헌법 개정안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사형제도를 폐지할 것인지는 현재 우리 사회의 주요한 화두 중 하나다. 다만 사형제도가 법적으로 유지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사형을 내리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한 기준에 따라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십수 년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할 당시의 일이다. 몇 건의 사형 선고 사건이 연속으로 대법원에 올라왔는데, 고심을 하시던 대법관님을 도와 머리를 쥐어뜯으며 연구 검토를 했던 일이 떠오른다. 사건 자체만을 놓고 보면 엄벌에 처해야 마땅했지만 그래도 꼭 사형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데 고민의 뿌리가 있었다.

사형이 선고된 기왕의 사례 중에서 이 사건과 유사한 선례가 있는지를 찾아보는 일이 관행적 검토 방식이었다. 유사 선례란 범행의 동기, 방법, 피해 결과, 범인의 특성 등을 서로 비교하여 공통점을 가진 사건을 칭한다. 축적된 사형사건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사건과 맞아떨어지는 사건들이 있는 것 아닌가. 사형 선례 중 유사 선례가 발견된 이상 이 사건도 사형 선고가 가능하리라는 짐작은 점차 확신으로 굳어갔다. 그러다가 이러한 방식의 논증에는 어떤 심각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데 문득 생각이 미쳤다. 머리를 망치로 두드려 맞는 느낌에 정신이 혼미했다.

사형 선고가 `이루어진` 사건들 중에서만 유사 선례가 있는가를 찾는 것은 잘못이었다. 가설검증과 같은 복잡한 논리를 동원하지 않겠다. 다음 질문에 대한 답만 생각해보면 오류는 자명해진다. 사형 선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들 중에서도 유사 선례가 발견된다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흉악무도한 범죄지만, 유사한 조건을 갖춘 선례들 사이에서 사형 선고가 된 사건과 아닌 사건이 갈릴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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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례는 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경계한다. `사형은 인간의 생명 자체를 영원히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문명국가의 이성적인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형의 선고는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이 문구 중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판사를 만나더라도, 그리고 시대 상황을 막론하고 이 사건은 사형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다고 하는 사건을 골라 예외적으로 사형 선고를 하라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여 말하자면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수소관으로 사형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시대적 분위기, 시류가 바뀌면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는 사건은 곤란하다는 말이다.

사건 검토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같은 조건의 모든 흉악무도한 사건들을 모조리 찾아 읽다 보니 그해 여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정도는 걸린 성싶었다.


사법살인으로 칭해질 정도로 사법 역사에서 치욕적인 인혁당 사건이 떠오른다. 서슬 시퍼런 권력에 굴종해서도, 비등한 압도적 여론에 매몰되어서도 아니 될 일이다. 후일 시대가 바뀌고, 또 여론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뒤라도, 그리고 다른 판사라도 같은 결론일지, 천착이 필요하다. 이때 느껴야 할 고심은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의 비장한 실존적 고독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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