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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보수의 '뉴 어젠다'는 없는가

  • 입력 : 2017.12.06 17:59:21   수정 :2017.12.08 17: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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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총리는 지난 대선에서 `보수궤멸론`을 꺼내 들었지만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통합과 협치`를 강조하며 이와 거리를 두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주지하듯 현 정권은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 편이 아닌 이들은 무너뜨리고 파괴해야 할 대상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국민에게 7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카를 도이치가 정치의 본질이라 갈파했던 `우적(友敵) 구분`을 잘해서 국민이 감동하고 있는 걸까? 냉정히 말하자면 기성권력의 폐단을 일소하겠다는 데 국민적 카타르시스가 작용하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하겠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낡은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수진영이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아직도 충분히 추락하지 않은 듯 패배를 인정하고 책임지기는커녕 권력 투쟁에 몰두하는 그들을 보면 정 줄 마음조차 들지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새로운 흐름을 관통할 보수진영의 `뉴 어젠다`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올 1월 개혁보수신당을 자칭하며 출범한 바른정당의 선거 연령 하향 논란을 환기해보자. 당시 정병국 창당준비위원장은 현행 19세의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당내 반발로 하루 만에 번복되고 말았다. 젊은 세대일수록 보수정당을 싫어하니 대선에 마이너스가 되리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2개국이 18세를 투표 연령으로 두고 있으며 보수정치의 표본이라 할 일본조차 2015년부터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췄는데도 말이다. 당장의 선거에는 설령 불리할지 몰라도 청년이 지지하지 않는 정치 세력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기본소득도 생각해 볼 의제다. 좌파의 전유물처럼 인식돼 온 기본소득 논의를 새롭게 점화하고 있는 곳은 실리콘밸리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로봇이 인간 능력을 추월할 날이 머지않은 만큼 인간을 위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기술 발전에 따른 사회적 충격을 흡수할 `쿠션`으로 이를 옹호한다. 매경 실리콘밸리포럼에서 만난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경제적 안전(economic security)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좌파인가? 이들의 논점은 결이 다르다. `기술 발전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기술 발전을 더욱 앞당길 것`이라는 시각과 더불어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면 결국 소비시장이 줄어드는 만큼 이를 보전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한다.

자유주의 경제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 기본소득을 찬동한 이유는 따로 있다. 각종 복지 전달 체계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적 행정비용을 비롯해 횡령과 착복 등을 감안할 때 이를 모두 없애고 아예 수요자에게 직접 돈을 주고 근로 유인을 끌어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논리에서다.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는 구체적 수치와 대안을 제시한다. "2016년 중앙정부의 보건·복지·노동 사업 예산은 120조원이 넘는다. 보건·복지·노동 사업이 통합돼 현금 지급으로 단순화됐다면 수입이 끊겨 동반 자살한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 같은 사건은 방지됐을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중 교육·의료·해산·장제 급여는 유지하고 생계·주거·자활급여와 국세청의 근로·자녀장려금을 폐지해 국가가 모든 가구(이하 4인 기준)에 연소득 2000만원을 보장해주자"는 `국민안심제도`가 그것이다.

돌이켜보면 사회보장제도의 원조는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였다. 당초에는 노동자들을 제도권에 끌어들여 국력을 높이려는 극우적 발상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의 기본적 삶을 보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보수진영은 왜 기본소득으로 민심을 획득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며 규제를 혁파할 `빅딜` 의제를 기획하지 못하는가? 성인이 되면 시민에게 투표권이라는 정치 권력을 부여한다는 사상은 당시에는 지극히 불온했지만 지금은 당연한 권리가 되었듯이 인공지능과 기계 능력이 인간을 대체할 시대에 시민에게 기본소득 배당이라는 경제권을 부여하는 것은 훗날 당연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보수진영은 비스마르크가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했던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김상협 카이스트 초빙교수·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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