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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필동정담] 주취감경

  • 심윤희
  • 입력 : 2017.12.05 17:22:19   수정 :2017.12.05 17: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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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21년 명문장가이자 애주가였던 우찬성 손순효가 만취해 임금 앞에서 주정을 하자 임금이 내관에게 부축해 나가게 했다. 손순효가 이 일로 사직을 청하자 임금은 "취중에 한 말에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그러니 대죄하지 말라"고 전교를 내렸다. 당시에도 술을 먹고 임금 앞에서 한 실수는 용서가 되는 분위기였나 보다. 술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관대한 한국의 문화는 그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모양이다.


한국은 1인당 술 소비량이 세계 14위로 유난히 회식·접대 등이 많은 `술 권하는 사회`다. 음주가무를 즐겨온 민족답게 마치 취미를 물어보듯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를 묻는 독특한 인사법이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술 기운에 정신을 잃어서…" "술이 과해서…"라고 변명하면 "그래 술이 원수지, 사람이 무슨 죄냐"며 대형 실수도 대충 넘어가기 다반사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 형량을 줄여주는 주취감경(酒醉減輕) 관행도 있다. 법적 근거는 형법 10조 2항인데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 형을 감경한다"고 돼 있다. 법원은 술에 취한 경우도 심신장애로 인정해 형을 줄여주고 있다. 2008년 초등학생 나영이를 강간한 흉악범 조두순에게도 주취감경이 적용돼 성폭행 최고형인 징역 15년보다 3년 깎인 12년형이 내려졌다. 2020년 12월 조두순의 만기 출소를 앞두고 청와대 게시판에는 주취감경을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21만명을 넘어섰다.

성폭력특
賈 개정으로 성범죄에 관해서는 판사 재량에 따라 음주를 심신미약으로 보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은 여전히 술 탓이 변명이 된다. 음주운전은 강력하게 처벌하면서 술 마시고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감형을 해준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음주 흉악범죄에 대해서는 감경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더 엄중히 묻는 주취가중(酒醉加重)이 옳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주폭(酒暴) 등 술로 인한 부작용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술은 정신질환도 아니고 조절 가능한 것인데 심신미약의 범주에 넣는 것은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다. 술 먹고 행한 범죄에 대한 법 적용도 달라져야 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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