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오피니언

[세상사는 이야기] 자메이카 탐색

  • 입력 : 2017.12.01 15:53:55   수정 :2017.12.01 16:11:4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797936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독일은 선거(9월 24일)가 끝난 지 오래인데 아직 정부 구성을 못하고 있다. 두 달을 끌었던 `자메이카 탐색`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무슨 해양 탐사 같은 것이 아니고, 연립정부 구성을 위해 서로 상대방의 의중을 짚어보는 대화였다. 이름이 자메이카인 이유는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CSU)·기사당(CDU) 연합을 나타내는 검정과 자민당(FDP), 녹색당(Die Grunen)의 노랑, 초록이 자메이카의 국기 색깔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놀라운 지지를 받아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유능한 메르켈 총리와 그 당이 혼자서 나라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연립정부를 만들어야 하는 까닭은 선거에서 이긴 다수당이 그냥 집권하지 못하고 과반수를 획득해야 정부를 구성하게 되어 있는 독일의 전통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느 당도 좀처럼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다수 득표당이 다른 작은 정당과 연정을 펴는 것이 독일 정부의 기본 형태이다. 이런 연정에 참여하는 작은 정당은 통치에서 일정 지분을 가지고 나름의 역할을 한다.

메르켈 총리가 지난번에 연임되었을 때는 제2당인 사민당(SPD)과 합하여 대연정을 이루었고, 사민당 당수 가브리엘이 부총리를 맡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민당 쪽에서 연정을 더는 하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한 바 있어 메르켈과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새 파트너를 찾아야 되는데 3위 득표를 한 극우정당과 협치를 할 수는 없고, 4·5위의 녹색당, 자민당은 둘 다 단독 협치 파트너가 되기에는 득표율이 너무 낮았다. 그래서 세 정당, 사실상 네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해야만 하는데 제각기 색깔이 너무 달랐다. 예컨대 녹색당의 이상론과 자민당의 현실론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 문제, 원전 폐기 문제 등 예민한 문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메르켈의 인도주의에 대한 자민당의 태클도 만만치 않았다. 난민 문제에서의 이견뿐만 아니라 자민당은 통일세를 예정대로 2019년이 아니라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힘 있는 통치를 함께해 가자면 미리 조율해야 할 것이 그 밖에도 한두 가지이겠는가. 그 조율이 길어지다가 `자메이카 탐색`은 결렬되었고, 이제 전통을 깨고 작은 정부를 구성하든지 아니면 선거를 다시 해야 할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선거를 다시 한다고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도 별로 없다. 작은 정부 쪽은 추진력, 실행력이 취약하다고 점차 논외로 되어 가고, 사민당과의 대연정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또다시 암중모색의 긴 협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또 협의를 어렵게 하는 난제들이 연일 돌출하고 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시금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돌출 사건들이 아니라 독일의 토론문화이다. 늘 저렇다.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토론이 워낙 많아 텔레비전도 재미라고는 없다. 한 문제를 두고 총리가 얘기하고, 장관이 얘기하고, 전문가가 얘기하고, 시민들이 얘기하고… 워낙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 어린 아이들이 잘하는 말도 "비논리적"이라는 단어이다.

자기 말이 비논리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말 한 사람은 그 말을 그만하고, 들은 말이 논리적이면 자기 생각은 달라도 납득한다. 논리적이지만, 즉, 네 말은
쩝嗤 난 그게 아니야라는 감정적인 태도는 있을 수 없다. 뭔가 주장이 있다면 애써 남을 설득하고 설득이 안 되면 자기주장은 접고, 또 듣는 사람 쪽은 납득이 되면 수긍하고 수긍하면 그대로 따르고 행하고…. 그것이 이야기를 나누는, 특히 논쟁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 단순한 것이 안 되어 말은 말대로 하고 행동은 다르다 보니, 남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고, 말해봐야 힘만 빠지고… 그런다면 나눌 말은 없어진다. 술을 먹든 어쩌든 무슨 딴짓을 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조금만 이득이 문제되면 했던 말을 뒤집는 것쯤 아무것도 아닌 사람과 무슨 협업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지금 독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저 기나긴 이야기는, 어찌 됐든 그 이야기가 끝나면 함께 힘 모아 한 방향으로 나라를 힘차게 이끌어갈 사람들의 사전 숙의이다. 그걸 아는 까닭에 국민도 인내가 있는 것 같고 멀리서 지켜보는 나도 선거 전후의 이합집산을 바라보는 불안감과는 달리, 오히려 국가 브랜드 1위 국가의 저력을 확인하는 부러움이 크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

박재현의 경제노트 더보기

박재현의 경제노트 썸네일2018년 집 살까 팔까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