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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손현덕 칼럼] 사우디 원자력 장관의 'You can do'

  • 손현덕
  • 입력 : 2017.11.28 17:16:03   수정 :2017.11.28 19: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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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전에는 36명의 사우디아라비아 연수생들이 와 있다. 원자력을 공부하러 멀리 중동에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찾았다. 작년 7월 입국했으니 벌써 17개월 됐다. 내년 말까지 교육을 받는 30개월짜리 연수과정이다.
한 달 좀 더 지나면 17명의 연수생이 추가로 들어온다.

사우디 청년들이 한국에 온 건 스마트원전을 배우기 위해서다. 스마트원전은 대형 원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노심, 증기발생기, 냉각펌프 등 원자력발전에 필요한 기기들을 하나의 압력용기 안에 모두 집어넣은 작은 발전소다. 대형 원전에 비해 전력 출력이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나 배관이 깨질 염려가 없어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재난 상황에도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바닷물을 민물로 바꾸는 담수화 기능이 있다. 전기와 물을 동시에 공급하는 일거양득 효과가 있다는 것. 통상 인구 10만명 미만의 도시에 유용하게 쓰이는 발전시설이다.

스마트원전의 원천기술은 한국이 갖고 있다. `스마트`가 우리의 고유 브랜드다. 35년 전 미국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배운 원전 기술. 국내에선 `원전 마피아`라는 비난을 버틴 원자력 영웅들이 100% 한국형 원전을 만들어냈고, 이제 와서 그걸 외국에 수출한다. 격세지감이다.

사우디에서 온 연수생들은 원자력 및 신재생에너지원(K.A.CARE)이라고 하는 정부기관 소속이다. 기관장은 장관급으로 하심 압둘라 야마니. 1995년부터 12년간 공업전력부와 상공부 장관을 지낸 거물로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우리나라에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데 역대 산업부 장관이나 한국전력 사장들과 두루 친분이 있다.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 시내 한복판에 있는 `K.A.CARE`를 한 달 반 전 이관섭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이 방문했다. 방문 목적은 스마트원전 수출. 한국과 사우디는 2년 전 스마트원전 건설 사업을 위한 협정을 맺었다. 사우디는 "돈은 우리가 댈 테니 원전만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기름을 때서 전기를 생산한다. 발전단가가 상대적으로 싸지만 그래도 원전이 더 싸다는 걸 알았고, 에너지안보 차원에서라도 원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한국에선 탈원전의 광풍이 거세게 불던 때였다. 사업에 적극적인 건 오히려 사우디였다. 야마니 장관은 "어떤 사업이든 초기에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리스크를 다 감수할 것이다. 꼭 스마트원전 사업을 성공시켜보자"고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참석한 한국 관계자들에게 "우리는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났던 1970년대 한국의 정신을 기억한다. 당신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들 아니냐"고 용기를 줬다. 이관섭 사장은 속으로 뜨끔했다고 한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나약해졌나"라는 자괴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야마니 장관은 면담을 마치고 일어서는 이 사장의 어깨를 툭 치며 한마디 던졌다. "당신은 할 수 있어(You can do)"라고.

이 사장은 지금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과 함께 유럽에 있다. 영국과 체코에서 원전 건설 이슈가 있다. 백 장관은 이들 나라에 대한 한국의 원전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팀을 꾸렸다. 영국은 무어사이드와 와일파에 각각 원전을 짓고자 한다. 아랍에미리트(UAE) 사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영국은 처음
부터 끝까지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사업이다. 땅을 사서 거기에다 발전소를 짓고, 전기를 생산해 영국 국민에게 팔고 나중에 수명이 되면 폐로까지 하는 소위 전(全)주기 일괄 패키지 사업이다.

대주주가 되는 만큼 리스크도 있다. 영국 내부에서의 반발도 제법 있다. 그러나 이런 원전 사업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세계에 우리나라 말고 별로 없다. 의지만 있다면 따낼 수 있는 사업이고, 칼자루를 쥐고 충분히 협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겐 있다. 만약 이 프로젝트를 수주한다면 그건 상업용 원전을 처음 건설한 영국에 후발 원전국 한국이 태극기를 꽂는 대역사가 될 것이다.

이 자리에 사우디의 야마니 장관이 있었다면 아마도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용기를 내라`고. `한국은 할 수 있다`고.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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