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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숙고와 직관 사이의 논쟁

  • 입력 : 2017.11.24 16:01:30   수정 :2017.11.24 1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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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는 재판 첫머리에는 증거서류를 미리 읽고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다. 이것이 지금 형사소송법이자 일반적인 형사재판 관행이다. 미리 증거를 꼼꼼히 읽고 재판 준비를 단단히 한 뒤에 재판을 시작하리라는 일반의 상식과는 다르다. 판사도 사람인지라 재판 전에 미리 증거를 본다면 각종 예단과 편견 때문에 중립적인 재판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법은 그렇지만 가끔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편견은 공정한 재판에 방해꾼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재판 시작에서 판사가 빈손으로 법정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 편견을 막는 일인지, 그렇게 재판을 시작하면 후일 편견을 갖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는 것인지. 오히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두지 않았다가 거짓 증거에 휩쓸릴 위험은 없는 것인지.

필자가 판사 시절 늘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다. 실제로 재판을 끝까지 해도 진상이 확연히 분간되지 못하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있다. 이 말을 들어보면 그런 것 같고 또 저 말을 들어보면 그 말도 옳은 것 같다. 재판을 거듭하다 보면 두툼한 기록 무더기만 쌓이게 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런저런 가정적 추론을 가지고 혼미에 빠지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을 시작할 때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한 채 법정에 들어오는 것에 불안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던 끝에 스스로 도달한 결론이 과연 열린 마음으로 증거를 심사숙고 끝에 받아들인 결론인지, 아니면 나의 개인적 경험이나 선입견이 부지불식간에 개입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이 문제에 관하여는 지난 한 세기가 넘도록 법적 판단과 의사결정이론 분야에서 법형식주의자들(Legal Formalists)과 법현실주의자들(Legal Realists)이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

법형식주의적인 입장에서는, 판사들은 주어진 법에 따라 논리적이면서도 단계적 추론과정을 거쳐 결론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법적 판단에 있어서 판사들은 법률을 대전제로 하고 인정된 사실을 소전제로 하여 결론에 이르는 삼단논법을 취한다는 것이 주장의 요체다.

그러나 법현실주의자들은 이 견해에 반대한다. 우선 판사들은 규칙을 검토하기도 전에 이미 사건 결론에 대해 선호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이러한 견해는 정의관념, 이념, 공공 정책적 선호도, 판사 개인의 개성과 같은, 당해 사건에 적용될 법 원칙과는 무관한 것으로부터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판결은 자신이 내린 결론을 나중에 합리화하는 작업의 소산이라는 것이 법현실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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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숙고와 직관적 판단. 이 두 가지 대비되는 마음의 상태는 비단 판사의 판단을 두고서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상사에서도 늘 선택과 결단이라고 하는 과제에 수도 없이 부딪힌다. 자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의식적 선택도 만만찮을 때가 있기는 하다. 때로는 다가오는 차에 용케 치이지 않고 차도를 잘도 횡단하는 것을 보면 우리 마음속 어디에선가는 자동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잘 작동하는 영역도 있는가 보다. 직관은
痢의 일상사 선택을 매우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직관에만 의존하였다가 치르게 될 실수는 때론 치명적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실수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영역이 마음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데, 그것이 바로 숙고적 마음이라고 한다.

재판을 하는 판사의 마음도 직관과 숙고가 교차하는 과정 속에 있을 것이다. 직관이 빠르게 먼저 등장하고 여기에만 머물다 보면 자칫 편견의 노예로 전락할 수 있다. 대량 정보의 확산 시대에 들어와 이런저런 재판외적 정보의 노출이 심하다. 그런 정보 중에는 편파적이거나 허구적인 것도 심심치 않게 섞여 있을 터. 이를 잘 분간해 내어 좋은 재판을 하는 판사가 많이 필요한 시대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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