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그래서 그대들은 영혼이 있는가

  • 노원명
  • 입력 : 2017.11.22 17:23:07   수정 :2017.11.22 17:56:29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775421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 적폐가 돼 사라졌지만 지금도 국정역사교과서는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국정이 갖는 치명적 결함은 다원주의적 가치를 희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중의 검정교과서가 예외 없이 좌편향적이라는 사실 앞에서 이 결함은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았다. 다원주의는 가짓수가 아니라 관점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다.
일률적으로 자기비하적 역사관을 강요하는 여러 검정교과서보다는 균형 잡힌 한 권의 국정이 나을 수 있다. 국정교과서는 문재인정부 집권과 동시에 폐기되었다.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 정책을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스톱시키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은 남았지만 폐기 자체가 민주주의적 절차를 위배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그럴 권한이 있고 이 권한을 시비해서는 안 된다. 그게 민주주의다.

교육부는 지난 9월부터 장관 직속으로 `국정화 진상조사팀`을 가동하고 있다.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별도다. 조사 결과에 따라 국정화에 관여했던 공무원들의 사법처리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들은 지난 정권의 대표적 부역 공무원,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낙인찍혔다. 이미 인사 발령이 취소되는 등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결국 몇 명은 구속돼야 끝날 것 같다. 영혼 없는 공무원에 대한 이 정부의 혐오감은 엄청나서 법을 바꿀 정도다. 인사혁신처가 얼마 전 입법예고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위법한 상관 지시나 명령을 거부해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했다. `영혼 있게` 행동하라는 얘기다.

그런데 물어보자. 공무원은 과연 영혼이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 현대 관료제 이론의 시조 격인 막스 베버는 이상적인 공무원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영혼의 배제를 강조했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정한 관료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자기 직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는 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 당파성, 투쟁, 격정은 정치가가 갖춰야 할 요소일 뿐 관료의 덕목이 아니다." 베버는 또 이렇게 말한다. "관료의 명예는 상급관청이 그가 보기에는 잘못된 명령을 고집하더라도 마치 그 명령이 자신의 확신과 일치하는 듯 정확하게 수행하는 능력에 있다. 이러한 도덕적 규율과 극기가 없다면 관료제는 무너진다." 베버에 따르면 정치가의 덕목은 책임을 지는 것이고 공무원의 덕목은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비아냥조로 말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실은 공무원의 소명을 완수케 하는 필수 덕목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정부의 공무원들을 `적폐`로 내모는 데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또 다른 누군가 그 일을 했을 것이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 명의 공무원은 "국가를 위해 일했는데…" 하는 심경을 내비친 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들을 자살로 내몬 것은 죄책감이었을까, 억울함이었을까. 운이 나빴다는 것은 확실하다. 왜 하필 그때 그 보직에 있었느냐는 말이다. 인생은 운칠기삼, 운이 나빠서 인생이 망가지는 사례를 수도 없이 보고 들었지만 운 없음이 사법적 단죄의 빌미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 적어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는 권력투쟁이 끝난 후 패배한 진영이 직면하는 운명의 질 차이로도 구분된다. 민주주의에서는 단지 권력에서 멀어질 뿐이지만 비민주주의는 이들을 처벌한다. 전직 국정원장 세 명이 국정원 특별활동비를 청와대에 뇌물로 건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중 두 명이 구속됐다. 베버적 기준에서 국정원장은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인인가, 명령을 수행하는 관료인가. 정치인에 가깝다고 본다. 다만 특활비 상납 관행이 지난 정권, 그리고 국정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유독 이들만 "나 좀 잘 봐주쇼" 하는 뇌물 제공 심리에서 그 돈을 건넸으리라 추정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만약 검찰에 영혼이 있다면 `이런 수사는 못 하겠다`고 뻗대는 검사 한둘쯤은 나올 법한데 그렇지 않다. 그들은 복종이라는 공무원의 윤리에 충실하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무원에게 영혼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지난 정권의 공무원들에게도 얼마간의 온정을 베풀길 바란다.

[노원명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

박재현의 경제노트 더보기

박재현의 경제노트 썸네일2018년 집 살까 팔까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