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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장경덕 칼럼] 가지 않은 길

  • 장경덕
  • 입력 : 2017.11.21 17:24:05   수정 :2017.11.21 17: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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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4 3 2 1`을 읽으며 가을을 보냈다. 이 소설의 구성은 독특하다. 주인공 퍼거슨 한 사람의 네 갈래 삶을 따라간다. 각각의 삶은 같은 시대와 인물의 대체 현실이다.
젊은 작가로 막 세상에 나오려는 순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퍼거슨도 있고 신문기자로 일하다 화재로 죽는 퍼거슨도 있다. 20대 중반의 네 번째 퍼거슨은 자신과 다른 세 갈래 삶을 함께 그려보고는 어느 한 길이 다른 길보다 꼭 더 낫거나 더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체 현실이 개인의 삶에만 있는 건 아니다. 한 사회에 대해서도 실제와 다른 현실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한국 사회가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그동안 우리가 실제로 걸어온 길과 걷지 않은 길을 함께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환란의 기억을 되새기는 이들에게는 유용한 사고실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환란은 한국 사회에 환골탈태를 강요했다. 스스로 변하지 못하던 우리는 외부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개혁을 시도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예외 없이 개혁을 부르짖었다. 문재인정부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그동안 우리의 제도와 행태와 사고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개혁은 충분하지 않았다. 문제의 뿌리를 뽑는 큰 개혁은 번번이 좌절됐다. 언제부터인가 개혁은 너무나 상투적인 구호가 되고 말았다.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미래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는 펀더멘털의 위기를 맞았다. 올해 실질성장률이 3%를 웃도는데 무슨 위기냐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란 직전인 1997년 3분기까지만 해도 성장률이 6%를 웃돌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생각을 달리할 것이다. 슈퍼맨처럼 성장을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산업은 일자리 해갈에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대대적인 혁신으로 생산성 혁명을 이루지 못하면 잠재성장률은 머지않아 0%대로 떨어질 것이다. 성장이 멈추면 사회 갈등은 폭발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균형은 무너질 것이다. 달리던 자전거가 갑자기 멈추면 균형을 유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싶다.

첫째, 우리는 지난날의 성장 신화에 너무 오래 취해 있었다. 관료와 대기업과 수출에만 기댄 빠른 추격자 모델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인 창조적 파괴와 혁신은 온갖 기득권 집단과 낡은 규제에 가로막혔다. 정치인들은 창조를 외치면서도 파괴를 감당할 용기는 없었다. 개발연대와 창업세대의 헝그리 투혼은 조로 사회의 안전 희구 성향으로 바뀌었다. 진정한 실력주의를 짓누르는 학벌주의는 더욱 굳어졌다.

둘째, 우리는 서로 다른 이들에게 너무나 마음을 닫고 살았다. 환란 이후의 위험 사회에서 개인은 지나치게 파편화됐다. 공동체의 신뢰자본은 바닥을 드러냈다. 구시대의 유물인 진영논리가 공감과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온갖 불평등과 불공정은 극단적인 분노와 투쟁으로 표출됐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이 대기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현실은 우리에게 공동체의 결속에 필요한 최소한의 연대의식도 없음을 보여준다.

셋째, 우리는 오랫동안 길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금은 지난 수백 년과 맞먹는 변화를 불과 몇 년 만에 경험하는 가속의 시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뚜렷한 전략과 목표도 없이, 불확실성의 안개를 헤쳐나갈 믿음직한 리더십도 없이 늘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언제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가운데 5년마다 달라지는 정부의 수사만 믿고 따르는 건 너무나 위험했다.

우리는 지난날의 신화에서 과감히 벗어나 끊임없는 혁신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도 있었다. 깊은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묵은 갈등을 풀어갈 수도 있었다. 가속의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전략을 갖고 자신 있게 미래로 나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폴 오스터 소설의 주인공은 대체 현실 속의 어떤 길이 다른 어떤 길보다 더 낫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우리는 분명 실제로 걸어온 길보다 더 나은 길이 있었음을 안다. 20년 후 우리는 또다시 지난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때 는 또다시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며 한숨짓지 않기를.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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