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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한국은행의 어떤 처신

  • 정혁훈
  • 입력 : 2017.11.20 17:05:42   수정 :2017.11.20 23: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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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이 되면서 새로 법인카드를 발급받은 후배가 모처럼 저녁 자리에 나타났다. 언제나처럼 선배 한 분이 계산을 하려던 순간, 후배가 선배를 가로막았다. "형님, 제가 법인카드로 한 번 쏘겠습니다." 그러자 개인사업을 하는 선배가 "무슨, 그건 나중에 네가 꼭 필요할 때 사용하고. 이건 내가 낼게" 하면서 그를 말렸다.
취기가 오른 후배는 호기롭게 받아쳤다. "형님, 이 카드는 한도가 없습니다."

선배는 후배의 기를 꺾기 미안해 계산을 하게 그냥 두었다. 다음날 술이 깬 후배는 전날 밤 호기를 부린 것을 후회했다. 카드에 명시적인 한도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제한으로 맘껏 쓸 수 있는 카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드 사용액이 암묵적으로 약속된 한도를 넘어선다면 회사 경리팀에서 바로 경고가 날아올 일이었다. 후배는 `명시적인 한도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팩트를 술김에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는 의미로 스스로 과장하는 우를 저질렀다.

선후배 간의 이런 대화가 생각난 것은 한국은행이 얼마 전 꼭 그 후배 같은 상황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5일 캐나다와 통화스왑을 맺었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한은 발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한은이 캐나다달러를 무제한으로 빌려 쓸 수 있는 통화스왑을 맺었다`는 내용이었다. `무제한`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중국과 560억달러 규모 통화스왑을 만기 연장한 것만으로도 온 나라가 들썩거렸던 게 얼마 전이었으니 말이다. 무제한이라면 그보다 훨씬 큰 금액에 대해서도 통화스왑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더구나 캐나다달러는 전 세계적으로 중국 위안화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어 기축통화급 평가를 받는다. 달러가 갑자기 고갈되는 위기가 닥쳤을 때 내밀 수 있는 카드로는 훌륭하다. 그런데 캐나다가 자기 나라 돈을 무제한으로 빌려준다는 게 맞는 말일까.

한은이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부터 다시 살펴봤다.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이번 통화스왑은 사전에 최고 한도를 설정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계약이다.`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누구라도 `무제한`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혹시나 싶어 캐나다 측이 발표한 영문 보도자료 표현을 찾아봤다. 한은이 긴 문장으로 설명한 내용이 영문으로는 `스탠딩(standing)` 딱 한 단어로 표현돼 있었다. 이 말은 `상설의` 혹은 `지속적인`이라는 뜻이다.

시기와 규모를 특정한 통화스왑이 아니라 상설적으로 운영되는 통화스왑이라는 것이다. 통화스왑에 정통한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금액을 미리 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방이 무제한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양측 간 협의를 통해 금액을 일정 수준으로 결정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은이 상설 통화스왑의 의미를 상세하게 부연 설명하려다 오해를 부추긴 꼴이었다.

한은도 오해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상한 듯하다. 발표 당일 브리핑을 맡은 한은 모 간부는 "퍼주기식 파이프라인은 아니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 브리핑에서 "무기한·무제한 통화스왑이 한국에서 처음이냐"는 질문에 그 간부가 "이번처럼 무기한·무제한 계약은 흔치 않다"
답변한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가슴에 확 와닿는 표현의 여파는 외환시장에 그대로 미쳤다. 가뜩이나 강세 요인에 둘러싸여 있던 달러당 원화값이 치솟는 데 불쏘시개가 됐다.

과장된 표현에 외환시장이 충격을 받고 있었지만 한은은 오해를 바로잡으려 들지 않았다. 당일 아침부터 관련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었지만 그다음 날짜 신문이 나올 때까지 그 누구도 `무제한`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지 않았다.

혹시라도 팩트보다 한국은행이 해외에서 이뤄낸 성과를 크게 알리는 것에 더 방점을 찍었기 때문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이런 것은 한은의 평판에 부담만 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혁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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