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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거꾸로 보기] TV의 진화…프로그램 다양성은

  • 입력 : 2017.11.17 15:52:11   수정 :2017.11.17 17: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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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인혜야, 엄마랑 결혼식 가야 하니까 이따 4시에 권투 녹화 좀 부탁해."

"또?"

"테이프는 넣어놨어. 그러니까 시간 맞춰서 REC만 누르면 되거든."

평소 스포츠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에 외출할 일이 생기면 늘 비디오 녹화를 주문하곤 하셨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이런 날이면 아버지의 부탁을 핑계 삼아 TV 시청을 맘껏 즐겼다.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면서 칭찬까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방송이 시작함과 동시에 REC 버튼을 완벽히 눌렀고 녹화도 무사히 이뤄졌다.

"이게 뭐야?" 외출했다 돌아오신 아버지가 비디오테이프를 틀어보시고는 이상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세상에…. 드라마가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방송 채널을 제대로 맞춰놓지 않아 다른 채널이 녹화된 것이었다.

화내지도 못하고 아쉬움을 꾹 참으셨던 아버지 표정과 황당하기만 했던 그날의 기분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할 일도, 이러한 실수가 일어날 일도 없어졌다. IPTV의 등장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방금 전 방송된 프로그램부터 몇 개월 전의 프로그램까지 다시보기 선택이 가능하다. 보고 싶은 만큼 프로그램의 회차를 묶어서 시청할 수도 있다. 모바일을 이용하면 집뿐 아니라 지하철이나 버스 등 밖에서도 방송을 볼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선택해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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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좋아하는 프로그램 시간이 다가오면 방송을 놓칠까 두려워 화장실도 안 가고 TV 앞에 앉아 있는 일이 많았다. `모래시계`와 같이 50%에 육박하는 인기 드라마의 방송 시간에는 전국적으로 수도 이용률이 줄어든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방송은 대중을 위해 만들어지다 보니 개개인의 상황을 일일이 고려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제공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방송국에서 지정한 프로그램 송출 시간에 무조건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방향적인 서비스에도 드디어 변화가 찾아왔다. 방송 시간과는 상관없이 시청자 개개인의 스케줄에 맞춰 원하는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라마 시작 시간에 맞춰 황급히 집에 올 필요가 없으며, 회의 때문에 즐겨 보는 프로그램을 놓쳤어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할지에 대한 모든 선택권이 전부 시청자의 몫이 됐기 때문이다.


방송사에서 늘 외치는 `국민을 위한 방송`이 실현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다.

각기 다른 프로그램인데도 포맷이나 소재가 비슷해 프로그램의 특성을 개별적으로 구분 짓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TV를 켜면, 연예인의 집이나 가족 등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훔쳐보기식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음식, 여행 등 비슷한 소재로 제작되는 예능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드라마 또한 새로운 드라마가 계속해서 제작되고 있지만 캐릭터 설정이나 인물 관계 구성이 비슷해 식상한 경우가 많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에서는 벗어났지만, 프로그램의 질과 다양성의 한계에서는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의 논란으로 공영 방송사들의 파업 사태가 뜨거운 요즘, 방송의 역할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 속에 국민을 위한 진정성 있는 프로그램 연구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지길 희망해본다.

[이인혜 경성대 교수·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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