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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필동정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 노원명
  • 입력 : 2017.11.14 00:01:01   수정 :2017.11.14 01: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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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오늘(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의 한 농가에서 박정희가 태어났다. 5남2녀 중 막내. 마흔 여섯에 잉태한 늦둥이가 부끄럽고 입이 느는 게 두려웠던 모친 백남의는 태중의 그를 지우기 위해 언덕에서 구르고 간장을 사발째 들이켰다. 수차례 낙태 시도가 박정희의 작은 체구와 독한 성격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살아남음으로 인해 현대사는 달라졌다.

박정희는 잘 웃지 않는 사내였다. 그 많은 기록사진 중에서 파안대소하는 표정은 몹시 희귀하다. 휴가지에서 딸 근혜, 근영, 아들 지만과 함께 있을 때조차 그는 쑥스러운 듯, 쓸쓸한 듯 아주 조금 웃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아버지는 누구나 그랬다. 생존이 투쟁이었던 시절을 무거운 어깨로 살아낸 사내들은 헤프게 웃을 수 없다. 박정희의 쓸쓸한 미소,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뒷모습에서 마음이 울컥해지는 경험을 해봤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한국 역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무인(武人)형 교양인`이었다. 그가 장교 시절 그린 군사작전 지도는 꼼꼼하기 이를 데 없다. 대통령 시절 쓴 업무메모는 군더더기 없이 일목요연한 그의 정신 상태를 보여준다. 국한문 혼용으로 쓰인 문장은 명료하고 글씨는 단아하다. 대구사범을 나온 그는 풍금도 치고 작곡도 곧잘 했다. 군부독재, 더구나 일본군 장교라는 출신 배경은 박정희를 영원한 논쟁 속에 가둬 놓는다.
원죄처럼. 그러나 군인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작전을 세우듯 경제개발 계획을 짜고 현대적 시스템에 대한 통찰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인가. 수백 년 이어온 문약과 관념, 명분의 포로에서 그처럼 빨리 벗어날 수 있었을까.

박정희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는 후대의 평가보다는 현생에 이룰 수 있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면 청류와 탁류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바다에 이르고자 했다. 본인의 100세 생일을 맞아 동상을 세우느니, 못 세우느니 옥신각신하는 후손들을 보면서 그는 김재규의 흉탄에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를 되뇌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괜찮다." 우리는 지금 대양의 한가운데에 서서 청류와 탁류를 따지고 있지는 않은가.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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