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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손현덕 칼럼] 균형외교의 고통과 시련

  • 손현덕
  • 입력 : 2017.11.13 17:16:46   수정 :2017.11.14 08: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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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사람들은 균형을 최고의 미학으로 여겼다. 수학과 물리학에서 예술에 이르기까지 균형이 아니면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인간의 DNA가 뇌의 구조를 그렇게 짜놓은 것처럼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문에서도 균형의 미가 발동된다. 소득 및 부의 균형배분, 산업별 균형성장, 지역 간 균형발전, 그리고 균형외교….

문재인 대통령이 긴 외교 일정을 소화하고 내일 귀국한다. 출국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곧바로 동남아시아를 돌고 오는 대장정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통해 적어도 외견상으론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의미 있는 합의도 끌어냈다.

이 슈퍼위크 기간 핵심 키워드는 `균형외교`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표현법을 달리했다. `균형 있는 외교`로 우회했다. 균형을 균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안타까움. 미·중 사이에서의 고뇌가 이 한마디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문 대통령은 외교 다변화라고 해석하면서 한발 비켜갔다.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고 중국이 부상하는 현실에서 균형외교는 미학의 차원을 넘어 한국의 생존을 담보하는 최선의 전략인 듯 보였다.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명제가 돼버렸다. 박근혜정부도 그랬고, 참여정부도 그랬다.

그러나 보란 듯 세계를 향해 포효하는 시진핑의 대륙굴기(大陸굴起)와 이를 견지하려는 트럼프의 아시아 전략이 정면으로 부닥치는 상황에서는, 균형외교든 균형 있는 외교든, 그 어떤 전략도 우리 스스로를 딜레마에 몰아넣고 생각지 못한 위험과 시련을 안겨준다.

중국은 "한국은 미국 편이냐, 아니면 중국 편이냐?"고 테스트하고 미국은 "한국은 과연 우리의 동맹이 맞느냐?"고 묻는다.

이미 3년 전부터 이런 테스트는 시작됐다. 굵직한 것만 해도 다섯 차례는 있었다. 첫째,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들어올 것이냐는 물음. 둘째, 중국이 새롭게 만드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라는 주문. 셋째, 톈안먼(天安門) 망루에서 전승절 열병식을 나와 같이 보자는 시 주석의 요구. 미국은 이 모두에 대해 내심 한국에 거절해줬으면 하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대한민국은 중국 편에 섰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일종의 예선전이었다.

네 번째 테스트는 남중국해였다. 이건 오히려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했다. 남중국해 이슈는 미·중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해양 영토 분쟁이다. 중간에서 균형 잡고 머뭇거리는 한국에 미국은 분명한 메시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법에 기초한(rule based order) 문제 해결이라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다섯 번째는 사드 배치. 우리는 무려 1년3개월 동안 시련과 고통을 겪었고 막대한 경제적 비용까지 치렀다. 그러면서 중국 측이 주장하는 약속이든, 입장 표명이든 소위 `3 No 선언`이라는 선물을 주고 말았다.

그러나 그건 새로운 테스트의 시작이다. 한·미·일 정상 간에 이미 합의한 안보협력이 군사동맹과는 뭐가 다르냐는 불 보듯 뻔한 중국의 시비에 미리 눈치를 본 걸까? 우리는 동해 공해상에서의 3국 연합훈련에서 빠지는 선택을 했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오락가락한 인도·태평양 협력도 향후 한국에 시련과 고통을 안겨줄 시험이다. 미국-일본-인도-호주를 잇는 미국의 소위 `다이아몬드` 안보 라인과 동남아와 인도양의 주요 항구를 연결하는 중국의 소위 `진주목걸이` 해양 일대일로 구상이 충돌하는 접점에 대한민국이 있다. 사드 문제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나온 `역사에 대한 책임` 발언은 일종의 협박이나 다름없다.

중국 전국시대에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있던 등나라는 편할 날이 없었다.
두 강국의 틈바구니에 낀 등나라의 신세를 간어제초(間於齊楚)라 했다. 어느 날 등나라를 찾은 맹자에게 등 임금 문공이 자문을 구한다. 그에 대한 맹자의 답.

"저보고 기어이 말하라고 하신다면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성을 높이 쌓은 후 그 밑에는 연못을 깊게 파고 백성과 더불어 죽기를 각오하고 지키십시오."

균형외교는 결기와 물리적 억지력이 있을 때라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치를 맹자는 이미 2500년 전에 꿰뚫고 있었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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