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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사라지고 있는 공직자들의 패기

  • 입력 : 2017.11.12 18:47:34   수정 :2017.11.12 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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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가 얼마 전 끝났다. 올해도 예년과 비슷한 광경이 연출됐다. 감사를 받는 기관장들과 관련 공무원들은 의원들의 질의에 대부분 고개를 수그리고 성실히 검토하겠다고 답변한다. 어쩌다 그게 아니라고 답변하면 국회의 권위를 무시하는 거냐며 질책을 받는다. 100만에 달하는 공무원들이 수립하는 정책들이 온갖 허점투성이인 것처럼 보인다.

돌이켜 보면 공무원들이 뚝심을 갖고 만든 훌륭한 정책은 많다. 그중에 최고라면 단연 `영종도 신공항` 건설과 `쓰레기봉투` 제도를 들 수 있다. 초창기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된 `영종도 신공항`은 인천국제공항이 되어 12년째 세계 최고 공항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2001년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6년여 먼저 개항한 일본의 `간사이공항`을 누르고 동북아 국제선 허브공항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이익단체의 편향된 시각과 지역감정을 배제하고 최적의 입지를 선택한 정책입안자들의 패기 덕분이다.

1980년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면서 아파트 지하층에 모이는 쓰레기 문제가 심각했다. 각 층마다 지하로 연결된 투입구로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릴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한밤중에도 쿵쿵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쓰레기 수거가 늦어지면 악취가 온 동네에 진동했다. 1995년부터 `쓰레기봉투`를 돈 주고 사야 하는 종량제가 실시되면서 거짓말처럼 한 번에 해결됐다. 이 또한 경제적 부담과 불편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무릅쓴 당시 정책당국자들의 패기 덕분이다.

이러한 공무원들의 패기가 최근 사라지고 있다. 국정감사 등을 통해 실패한 정책은 물론이고 성공한 정책도 세부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고 혹독히 비판받고 있다. 결과나 절차가 모두 완벽하더라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뿐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종도 신공항`이나 `쓰레기봉투`와 같은 정책을 입안한 사람이 누구인지, 훈장을 받았는지 관심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의 패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공무원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확실한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무작정 국가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금전적인 보상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재정 형편상 현실적으로 어렵다. 방법은 비금전적 보상인 인정(recognition)을 활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정제도로 공무원 포상제도가 있다.

매년 연말에는 공무원에 대한 대규모 포상이 이루어진다. 대부분 장기 근속한 퇴직공무원들이 직급별로 훈장부터 표창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나누어 받는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국가에 봉사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럴지 모르나 지금은 아니다. 공무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해고되지 않으며, 급여 수준은 민간에 접근했고 퇴직 후에는 연금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에 노량진 학원가는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젊은 `공시생`으로 북적였다고 한다.

공무원 포상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사실 장기 근속한 공무원들은 오랜 기간 고용해 준 국가에 감사해야 한다. 국가가 훈장까지 주면서 감사할 일은 아니다. 이 같은 의례적인 무더기 포상은 과감히 줄여야 한다. 대신 성과를 낸 공무원들에 대한 포상은 대폭 늘려야 한다. 과거 성공한 정책을 추진한 공무원들까지 찾아내서 포상하면 더욱 좋다.

국회, 감사원 등 사정기관은 큰 그림으로 국정을 감시해야 한다. 정책의 성과가 있다면 절차상의 실수는 용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신 정책의 시기를 놓친 것을 강하게 질책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감사 관행에서 공무원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뻔하다.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일하면서 정년까지 보장받고 퇴직할 때 포상 받고 여생을 편하게 보내는 것이다.

과감한 정부 포상제도의 개편과 감사 관행의 변화를 통해 공무원의 패기를 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영종도 신공항`이나 `쓰레기봉투` 같은 역사에 남을 만한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신제윤 태평양 고문·전 금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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