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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데스크] 한국판 공유지의 비극

  • 김명수
  • 입력 : 2017.11.12 18:46:36   수정 :2017.11.12 2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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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방목지에 양을 풀어 놓으면 목초지는 어느 순간 폐허가 된다. 양치기는 양들을 먹이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 목초지 관리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양들은 굶어 죽게 되고 양을 기르는 양치기의 일자리도 사라진다. 바로 공유지의 비극이다. 양치기가 목초지라는 공공재에 무임승차하다가 공공재가 사라지면서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결론이다.

이런 공유지의 비극이 한국에서 재현될 판이다. 최저임금을 빠르게 인상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당장 내년에만 3조원에 육박하는 세금을 부을 태세다. 세금 퍼주기가 여기서 그치면 다행이다. 보조금 수혜 기업이 당장엔 30인 미만 사업장이지만 무임승차를 노린 행위들이 등장할 것이란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예상치 못한 추가 보조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향후 5년간 공무원 17만명을 추가로 고용하면 30년간 300조원이 넘게 들어간다는 예측도 있다. 공무원 숫자가 늘어나면 대개 사업이나 규제도 늘어난다. 사업이 늘어나면 예산 증가는 필수다. 규제가 늘어나면 기업이나 일반 국민의 불편함은 물론 비용도 수반될 수 있다.

우리 재정 상태가 건전하다 하지만 공공재 원천인 국가 재정을 선심성 정책에 쓰다 보면 거덜 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스가 그랬다. 요즘 세수가 목표보다 더 늘어났다고 해서 재정 악화를 걱정하지 않는 게 국내 분위기다. 반도체업계나 정유업계 호황이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금리나 유가가 오르면 세금 쓸 일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자랑하는 건전 재정도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한국판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정부가 공유재의 원천인 국민의 혈세를 활용하기보다 민간 부문의 역할에 적극 기대는 게 낫다. 기업은 많은 돈을 벌어 주주에게 이익을 주면서도 투자를 확대하면 일자리를 자연스럽게 늘리게 된다. 정부의 실업 걱정도 해결할 수 있다.

기업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공유가치 창출(CSV) 경영`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주를 위한 이윤 극대화에만 그치지 않고, 종업원 협력사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까지 감안한 경영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마이클 포터 교수가 대표적인 주창자이다.

한국에서 공유가치 경영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기업은 SK그룹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공유지의 비극을 막을 방법으로 공유가치와 일맥상통하는 사회적가치 창출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기업이 재무적가치만 다하면 되는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대기업도 변혁을 해야 하고, 그 방향은 사회적가치 창출"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도 인간이 이기적이지만 이타심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삶의 동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이 이윤 극대화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가치를 창출해 사회와 상생하는 경영이 가능하다는 점을 일찍이 예견했던 셈이다.

기업의 이익이 임금 상승이나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비정규직만 늘어나는 현상은 큰 문제다. 기업에만 맡겨 놓은 결과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공유가치 창출은 기업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대안은 자본시장의 `지원사격`이다. 요즘 유럽이나 미국에서 확산 중인 ESG(환경경영·사회책임경영·우수거버넌스) 투자가 그 해법 중 하나다.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의 재무요소만 보는 게 아니라 공유가치나 사회적가치 창출 수준을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투자 방식이다.

물론 영세한 기업에는 이 원칙이 적용되기 어렵다. 큰 기업부터 이런 투자 원칙이 적용된다면 중소기업은 물론 영세기업도 혜택을 받을 것이다. 가령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가 협력사와 공정한 거래를 하면 협력사가 돈을 벌게 되고, 이 협력사를 제대로 관리하면 협력사 근로자들의 임금이 올라가고 정규직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면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도 품질 좋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해 장기적으로 이익을 보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기관투자가들은 이를 감안해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에 대한 투자를 더 늘리게 된다. 주가가 오르면 대주주들도 이익을 보는 구조다.
반면에 기관투자가는 저임금으로 장시간 근무하는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임금 상승이란 정부의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구조다. 공공 부문에 세금 퍼줄 일도 줄어든다. 그러면 큰 정부는 필요 없게 되고 공유지의 비극도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아니다.

[김명수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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