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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허락되던 부당함이 허락되지 않는 순간

  • 입력 : 2017.11.10 15:56:15   수정 :2017.11.10 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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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일반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와는 달리 펀드회사가 운용하는 뮤추얼 펀드의 주당 가격은 하루에 한 번씩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뉴욕 증시가 마감되는 오후 4시 기준으로 한 펀드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주식의 가격이 확정되고 이를 토대로 그 뮤추얼 펀드의 그날 고시가격 역시 확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후 4시 이전까지 들어온 투자자들의 매입 혹은 매각 주문은 이 가격으로 실행된다. 그리고 4시 이후부터 그 다음날 4시까지 접수되는 주문은 그다음 날 오후 4시에 결정되는 가격으로 실행된다.

그런데 2003년 미국 뮤추얼 펀드 분야를 흔들어놓은 스캔들은 이 당연한 콘셉트가 오직 일반투자자들에게만 적용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거래를 많이 하거나 소유 액수가 큰 특별 고객들에게는 4시 이후에도 그날 고시된 가격으로 펀드를 매입하거나 매각할 수 있는 특혜를 주는 관례가 큰 문제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테크놀로지 분야 주식을 하락시키는 뉴스가 오늘 4시 5분에 공개됐다고 하자. 그러면 내일 오후 4시에 결정될 테크놀로지 펀드의 가격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른 손실을 막기 위해 특별고객은 더 높은 오늘의 가격으로 소유하고 있던 펀드를 매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가 피해 간 손실을 다른 일반 펀드 소유자들이 나누어 갖게 된다.

하지만 나를 더 불편하게 했던 것은 이런 불법 관례를 금융감독관들, 내부감사와 컴플라이언스 그룹 책임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저 특별고객 관리 차원에서 다들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 내게 이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은 할리우드 거물 감독 하비 와인스타인을 시작으로 세상을 휩쓸고 있는 성추행범들을 폭로하는 사건이다. 그의 오랫동안 지속된 성추행과 성폭행이 알려지자 트위터에 #MeToo가 시작됐고, 침묵을 지켜왔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동안 권력이 있었던 사람들, 그래서 그 권력으로 여성들을 성추행했던 사람들이 할리우드만이 아닌 여러 분야에서 하나둘씩 나오다가, 이제는 이런 사람들이 하루에 몇 명씩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사과나 합의금으로 일을 마무리하던 때는 지나갔다. 성추행범들은 이제 종사하던 분야나 회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떠나야 하는 현실에 접했다.

그런데 왜 이런 부당함이 이제서야 절대 허락될 수 없는 일로 인식됐을까. 통계에 따르면 여성 세 명 중 한 명은 직장에서 성추행을 당한다고 한다. 증시 마감 후 특혜 펀드 트레이딩처럼 직장에서 일어나는 성추행 사건이 부당하고 불법이란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은 많았으리라. 왜 우리는 이런 부당함을 그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고 생각해 왔을까. 딸을 가진 부모는 `내 딸이 그런 일을 당한다면` 이란 생각을 했을 텐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갖는 동시에 더 걱정되는 것이 있다.
어떤 부당함에 우리는 아직도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걱정 말이다.

우리 주위에는 허락돼서는 안 될 부당함을 경험하는 이들이 많다.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 공평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청년들, 주민들의 반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장애우들 등. 나만, 우리 가족만 피해를 피하면 된다는 태도를 버려야 할 때가 왔다. 트위터를 통한 메가트렌드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우리 가족과 이웃을 위해 부당함을 줄이는 일에 앞장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신순규 시각장애 월가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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