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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길을 잃은 쓰레기

  • 입력 : 2017.11.08 17:40:24   수정 :2017.11.08 17: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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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하늘이 푸르고 날씨가 서늘한 계절이 오면 누구든 할 수만 있다면 밖으로 나가려 할 것이다. 그리고 집 밖에서는 내가 세상의 즐거움으로부터 이렇게 소외되어 있었나, 자책하게 만드는 숱한 즐거움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말이면 곳곳에서 벌어지는 거리 축제며, 축제에 부록처럼 따라오는 음식의 향연 또한 우리를 강렬하게 유혹하는 외출의 한 측면이다.

나 역시 얼마 전 이태원에서 열리는 거리축제를 찾았다. 미국 유학 시절 주말마다 열리던 거리축제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던 터라, 맑은 공기 속에서 비타민D도 섭취할 요량이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거리 좌우로 다양한 프로그램의 천막들이 줄지어 나풀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중 압권은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눈을 사로잡는 음식들과 천지에 진동하는 음식 냄새였다. 어떤 의미로는 장관이기까지 했다. 특히 이태원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살려 다양하게 참여한 각국의 토속 음식들은 이국적인 미각을 한껏 일깨워주었다. 눈도 코도 혀도 오감이 즐거웠다. 쉽게 보지 못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은 뒤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테이크 아웃해 손에 들고 계속 돌아다녔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도무지 지루한 줄 몰랐다.

어느덧 아메리카노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나는 휴지통을 찾아 바삐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부터 모호한 불안이 나를 따라다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거리에 휴지통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음료를 테이크 아웃해 간단히 한잔 마신다 해도 버릴 곳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다. 그러니 뭔가를 마시며 한가롭게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 샌가 빈 잔을 들고 다니며 휴지통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편의점 앞에서 서둘러 마시고 그 옆 휴지통에 버리기 일쑤였다.

거리에서 휴지통이 사라진 이유에는 숱한 논의와 명분과 논리가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타당한 이유는 `쓰레기 무단 투기`다. 아주 오래전 몇몇의 경우겠지만, 공공 쓰레기통에 영업용 쓰레기와 가정용 쓰레기를 무단 투기해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자구책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보았다.

주말이건 평일이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를 다니다 보면 대로가 아닌 작은 골목 안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다 버린 쓰레기들이 몰래 숨겨져 있는 것을 자주 본다. 흔하다 못해 당연해진 광경이다. 물론 쓰레기를 끝까지 들고 다니다 집에 가서 버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일회용 컵이나 음료 병을 들고 다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버린 적이 있었다. 상점에서 뭔가를 구매할 때나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을 때 가지고 있던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부탁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본의 예를 들자면, 거리를 걸으며 뭔가를 먹는 것 자체를 에티켓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물을 산 장소 앞에서 다 먹은 다음 거기 놓인 휴지통에 버리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 개인의 매너가 아니라 사회에서 합의된 행동 양식이 되었다.

이런 습관이나 매너, 도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음식이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그들이 판 물건의 쓰레기를 처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거리에 휴지통이 있어도 무단 투기하지 않는 에티켓을 국민적 상식으로 만들어가는 문화일 것이다.

지금도 이 정도로 거리가 깨끗하고, 서울이 세계적으로도 깨끗한 도시라는 평을 듣게 된 데는 환경미화원들의 노고가 컸다고 생각한다. 대로변에서 휴지통이 사라진 것에 대한 반발로 쓰레기가 골목의 은밀한 구석마다 노골적으로 버려져 있다면, 누구보다 우리가 먼저 부끄러운 노릇일 것이다. 훌륭한 도시의 바탕이 되는 것은 공공질서에 대한 학습이나 교육 이전에 우리 마음속에서 발현되는 시민의식일 테니까.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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