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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포츠담의 추억

  • 윤경호
  • 입력 : 2017.11.08 17:33:49   수정 :2017.11.08 17: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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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외곽행 열차 에스반으로 1시간이면 충분했다. 지난달 말 출장길에 포츠담 체칠리엔호프 궁전을 찾아갔다.1945년 7월 미국, 영국, 소련 수뇌가 모여 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 방안을 논의했던 곳. 세 거두가 앉았던 원탁 테이블과 의자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궁전의 일부는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다섯 달 전 우크라이나 얄타의 리바디아 궁전에서 열렸던 회담에는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영국 윈스턴 처칠,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이 만났다. 이탈리아는 항복했고 독일도 손을 들기 직전 3국은 전후 처리를 이미 논의하기 시작했다. 포츠담 회담엔 주인공이 일부 바뀌었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그해 4월 뇌출혈로 사망하는 바람에 부통령 해리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해 나타났다. 처칠 영국 총리도 회담 도중 선거에 패배해 노동당의 클레멘트 애틀리에게 자리를 넘겼다. 역사적 우연까지 한몫한 데다 얄타부터 참여한 덕분에 스탈린은 내내 주도권을 쥐었다.

하지만 얄타와 포츠담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바꾼 쓰라린 정상회담이다. 패전국 독일을 분할 통치하기로 한 결정과 함께 한반도를 38도선으로 나눠 소련과 미국이 관리하기로 한 방안이 짜였다. 정작 전범국 일본을 분할하지는 않고 그 식민지 한반도를 쪼갠 것이다. 소련은 러일전쟁 때 잃은 북쪽 4개 섬 반환에 만족하며 한반도를 38선으로 분할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식민지에서 막 벗어났지만 그래도 주권을 회복한 국가 운명이 강대국 간 정상회담에서 결정돼버렸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로 취재했던 경주 한미 정상회담도 끔찍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5년 11월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길에 경주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따로 가진 만남이었다. 두 달 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끌어냈는데 미국이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북한의 자금세탁 창구라며 제재하자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양국 정상은 결국 북핵 문제에 합의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외교관 생활 중 겪은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길에 한국을 국빈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틀간 일정 내내 만족스러워했다. 최대 현안인 북한 도발에 대해서는 한미가 압도적 힘으로 공동 대응하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뜻을 모았다. 우리로부터 수십억 달러어치 무기 구매를 따냈고, 한미동맹에 기초한 양국 관계가 얼마나 공고한지 대내외에 확인시켰다.

이렇게 잘 마무리된 한미 정상회담을 보면서 얄타와 포츠담을 떠올린 것은 트럼프의 다음 일정인 미·중 정상회담 때문이다. 어제 서울을 떠나 베이징으로 날아간 트럼프는 2박3일간의 중국 국빈방문에 들어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쯔진청(紫禁城)을 통째로 비우고 청 건륭제가 쓰던 방을 차 마실 장소로 내놓으며 황제 대접을 했다. 시 주석 스스로 19차 공산당대회 후 1인 천하를 굳혔으니 트럼프와 명실상부한 양강, 이른바 G2 위상을 과시하고 싶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대신 인도·태평양 개념을 꺼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새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이 군사동맹 관계인 일본, 호주에다 인도를 끌어넣어 중국의 부상에 대응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에 맞서야 하지만 중국을 의식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조심스러워하는 현 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미국의 새 전략에서 한국만 쏙 빠지는 사태가 현실화될 수도 있으니 긴장해야 한다.

9일 열릴 미·중 정상회담 의제는 북핵 문제와 양국 간 무역 불균형 등이다. 우리의 관심은 양국의 북핵 해법 방향이다.
중국의 쌍중단(북한 핵 미사일 개발과 한미합동훈련 동시 중단)과 미국의 군사옵션을 포함한 제재 압박에서 훌쩍 건너뛰어 한반도를 흔드는 엉뚱한 카드가 나와서는 안 될 일이다. 트럼프가 밝혔듯이 한국을 건너뛰는 북핵 해법은 없어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이 다시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혹은 우리를 쏙 빼놓고 강대국 정상회담에서 결정돼서는 안 된다. 얄타와 포츠담 회담 재연은 어떤 상황에서도 막아야 한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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