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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통신] 의롭고 외로웠던 안중근 의사

  • 입력 : 2017.11.06 17:33:13   수정 :2017.11.06 17: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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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본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지 108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의 의거와 생애를 들여다보면, 이런 분이 우리 역사에 계셨는가 하는 감동과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가 이토를 사살한 이유는 러일전쟁 직후 한국의 국권을 강탈하고 중국 만주를 넘보는 한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평화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파탄시킬 인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본이 침략의 야욕을 버리고 각각 독립한 한·중·일 삼국이 서로 화합하고 동맹하여 서양세력(특히 러시아)에 방어하여 평화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구주 및 세계 각국과도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가졌습니다. 나아가 구체적으로 3국 대표로 `동양평화회의`를 설립하여 그 본부를 뤼순(旅順)에 두고, 3국 청년들로 `군단`을 편성하고 이에 소속된 청년들에게 2개국 이상의 언어를 배우게 하며,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화폐를 발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이른바 동양평화론입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 수차례 전쟁으로 그때마다 영토의 주인이 바뀌었던 알자스로렌 지방 출신 프랑스 신부들과의 교류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 진위를 떠나 그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독실한 천주교 신앙의 깊이에서 나오는 인권·평화정신의 발현이라 할 것입니다. 어쨌든 `동양평화회의`의 구상이야말로 오늘날의 유럽연합(EU)에 흡사한 것으로 그 시대에 어찌 그러한 생각을 하였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우리가 안 의사를 숭모하는 것은 그의 애국심과 평화정신 때문만이 아닙니다. 고매하고 순전한 인격과 깊은 신앙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는 의병 부대장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일본군을 사로잡고도, 포로는 살해해서는 안 되고 수용시설이 없으면 풀어주어야 한다는 당시의 국제규범에 따라 석방하였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일본군에 추격당해 많은 대원이 전사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사형판결을 선고받고도 상소하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라`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당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입니다. 그리고 사형이 집행되기 사흘 전에 어머니에게 `예수를 찬미합니다`로 시작되는 유서를 썼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에 용서를 구하고 훗날 천국에서 만나 뵈올 것을 다짐하고 아들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해달라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집필 중이던 동양평화론의 집필을 중단한 채 기도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사형 집행 시 남길 말을 묻는 일본 관헌에게는 `동양평화를 위해 한 일이므로 유감은 없으며 입회한 관헌들께서도 일한친화와 동양평화를 위해 진력해 달라`고 부탁하고 동양평화 만세를 부르기를 희망하였으나 허용되지 아니하여 3분여 동안 기도를 하고, 어머니가 보내준 명주 두루마기를 입고 스스로 사형대로 올라갔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31세 때였습니다. 재판 과정이나 옥중에서 그와 접촉하였던 많은 일본인 관헌들도 그의 인품에 감복하여 존경심을 품게 되었고 그 후 많은 일본인 학자들도 안중근 연구에 나서고 있습니다.
야마무로 신이치(山室信一) 교토대학 명예교수는 금년 4월에 발간된 저술에서 "안중근의 백조의 노래인 동양평화론은 미완으로 끝났다. 그러나 미완인 것이 완성된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미래 세대가 자유롭게 그 여백을 채워갈 수 있도록 백지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한 세기 전 우리 역사에 홀연히 등장하였다가 재판 과정에서 제대로 된 조력도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사라져간 안중근 의사를 숭모하고 내외에 널리 알리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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