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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새 대법원장에 대한 기대 II

  • 입력 : 2017.10.27 15:48:16   수정 :2017.10.27 16: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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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행사장에서 만난 판사로부터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필자의 친구였던 어느 법원장 근황을 듣게 됐다. 그 법원장은 판사들 사이에 칭송이 자자하다는 전언이었다. 본디 자상하고 밝은 품성의 친구라 그런 칭송은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이어진 부연설명은 다소 의외였다. "법원장님은 우리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좋아들 해요."

여기서 `일`이란 재판 업무 이외의 `가욋일`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재판 업무는 원래 판사들이 해야 할 직업적 숙명임은 판사 누구든 공감한다. 이 일은 누가 시킨다고 하고, 시키지 않는다고 하여 게으름을 피울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형사재판장 시절 어느 새벽에 임사 체험을 할 정도로 의식을 잃었다가 응급실에 실려 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 예정된 판결 선고 때문에 간신히 링거 줄만 빼고 법정에 업혀 들어가 판결문을 읽었다. 바로 그날 무죄 석방될 사람임에도 판사가 아프다는 이유로 풀려나지 못한다면 이건 큰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재판에 몰두하다 보면 개인 일상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봄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한 매우 중요한 재판 선고 날 재판장이 뒷머리 헤어롤을 미처 풀지 못하고 출근한 일이 카메라에 찍혀 화젯거리가 됐다. 모두가 재판이 갖는 독특한 마력 덕분이다. 하지만 비단 판사뿐이랴. 자기 직업을 숙명으로 여기고 열심히 일하는 이 세상 모든 분들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개인사도 안중에 그리 두지 못할 터에 (이른바 판사들 사이의 은어로) `위에서 시키는 가욋일`을 탐탁하게 여길 판사는 그다지 없을 듯싶다. 그런데 이 문제로 불평도 만만치 않게 들려오는 것은 웬일인가. 칭송받는 법원장이라면 `일`을 시키지 않는 덕목이 있어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때가 됐다.

새 대법원장은 고쳐야 할 산적한 일들 앞에 서 있다. 하지만 그 일들의 콘텐츠에만 머물러 성과의 달성에 집착하기엔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일들은 모두가 법원 구성원들의 적극적 동참이 필요해 보인다. 자연스럽게 `위에서 시키는 일`은 늘어날 성싶다. 그런데 그런 관료적 일로 시간을 빼앗지 말아달라는 것이 판사 사회가 요구하는 또 다른 개혁과제라고 한다면 이런 모순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재판 절차 경험이 재판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묻는 연구들이 있다. 배심원들은 다른 경험자(증인·피고인)에 비해 자기가 한 재판에 대한 신뢰도와 만족도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다. 자기가 직접 관여하고 컨트롤했던 일에 대해 애정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법 신뢰를 높이기 위해 국민 배심원 사법참여제도가 도입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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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정책 결정을 판사들로 하여금 `윗분들만의 일`로 여기게끔 해왔던 데에는 모종의 어떤 음모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법관료가 장막 뒤에서 독점해 왔던 의사결정 구조를 해체하고 그 주인 자리를 온전히 판사 사회에 돌려주자는 것이 더글러스 맥아더의 전후 일본 사법개혁 요체 중 하나였다. 미국 연방판사들이 업무 역량의 10%를 위원회 방식으로 사법행정 사무에 투입하는 것이 모델이었다.

사법민주화가 거론될 때마다 우리 역시 형해화한 판사회의가 문제라고 지적됐다. 최근 공론화위원회가 보여준 의견수렴 과정에 주목해본다.
리더가 제시한 목표 달성, 우상 세우기에 동원될 때 영혼 없는 불행이 싹튼다. 저마다 다른 의견을 가졌지만 같은 배를 타고 노 젓는 일에 동참한 여정 자체 때문에 더 행복할 수 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세일러 교수의 `넛지`를 다시 읽어볼 이유가 생겼다. 우리 마음은 어떨 때 움직일 것인가? 이것이 세상 화두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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