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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자존감] 쓸모없는 일은 없다, 잡일이 있을 뿐

  • 입력 : 2017.10.25 17:01:55   수정 :2017.10.26 0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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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 때 직장인이던 아내와 연애를 했다. 종종 그녀 동료들과 대화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세련된 정장을 입은 것도 부러웠지만 무엇보다 비교되는 것은 그들의 업무였다. 한 해 수억 원씩 수주를 하고 해외 상황을 분석하는 것을 보면서 참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앞에 앉아 "이런 이론이 무슨 쓸모가 있나?" 하는 회의가 들던 때라 부러움은 더 컸다.

시간이 흘러 직장인의 고충을 듣는 일을 하다 보니 학생 때 나와 같은 공허감을 느끼는 내담자들을 많이 만난다. 이들은 직장에서 의미 없는 자질구레한 일만 하다가 열정을 잃어간다고 하소연한다. 대학원을 나오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복사기를 돌리거나 커피를 타다 보면 "내가 이러려고 그 고생하며 공부했나"라는 자괴감이 커진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도 신입사원 퇴직자가 꾸준히 느는 이유엔 이런 허무함도 한몫하는 것 같다.

인류에게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사냥을 마친 원시인들은 동굴벽화라도 그렸고, 농한기에는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성취해낸 생산물은 심리적 보상이 되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사회가 발달하면서 생산의 과정과 절차도 복잡해졌다. 직접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는 사람보다 이런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품종을 개발하는 연구소, 적합한 기계를 만드는 공장, 산업이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금융사도 생겼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생산에 참여하지만 생산물을 만날 수 없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해수의 흐름과 날씨를 분석해주는 연구원들은 꼭 필요하지만 평생 만선의 기쁨을 느낄 수 없는 것과 같다.

유능한 리더들은 이 사실을 조직원들에게 잘 일깨워준다. 지금 조직원이 하는 일이 사회라는 큰 틀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팀원들이 자신의 임무를 소중히 여기도록 동기를 부여하며 조직원들 자존감을 지켜준다. 이러면 당연히 조직원들의 열정도 커지고 오래간다.

안타깝게도 이런 리더가 없는 회사도 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무턱대고 지시하는 상사, 인사고과 낮은 일만 몰아주는 시스템은 직장인을 지치게 한다. 묵묵히 하면 계속 시키고, 못하면 그것조차 못하는 무능력자로 보이니 직장인들은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사실 직장에 쓸모없는 일은 별로 없다. 신입사원이 쓸모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단순업무나 서류 정리조차 나중에 보면 반드시 필요한 일들이다. 하지만 상사가 직접 해도 되는 커피 타기나 잔심부름, 반복되는 복사 등 이른바 잡일은 좀 다르다.

이런 잡일이 장기간 계속된다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엔 저항이 있겠지만 거절도 자꾸 하다 보면 스킬이 는다. 잡일이 우리의 성장을 막게 둬서는 안 된다.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우리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경우라면 최대한 빨리 해버리는 게 낫다. 잡일 전담가가 되지 않기 위해선 80%까지만 해놓고 20%는 남겨둬야 한다. 시킨 사람이 "다했어?"라고 물어보면 "다해갑니다"라고 대답하고 언제 끝낼지 스스로 결정해두면 좋다. 일을 잘, 빨리 하면서도 속도와 시간은 스스로 관리하며 주체적 입장이 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우리 모두 잡일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상사라면 자기 잡일은 스스로 하는 습관을 들이길 권한다. 신입사원들은 생각보다 엄청난 노력을 통해 큰 열정을 안고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만큼 제대로 써먹어야 한다. "나 때는 다 그렇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얼마나 속상하고, 상사를 미워했는지 꼭 한번 복기해보시길….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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