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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반도의 '특이점'과 그린 데탕트

  • 입력 : 2017.09.13 17:50:40   수정 :2017.09.14 18: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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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은 갑자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하나, 둘, 넷, 여덟…." 전자는 산술급수의 선형적 셈법이고 후자는 기하급수의 가속형 셈법이다. 처음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차이는 천문학적으로 벌어지는 수확체증이 기술발전의 특성이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지난여름 팰로앨토에서 개최된 매경 실리콘밸리포럼의 기조연설을 맡은 커즈와일은 "기술발전에 따른 패러다임 전환 속도는 1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해 왔다"며 "21세기는 20세기보다 1000배 정도 빨리 발전하게 될 것"이라 자신했다. 그가 격변의 `특이점`을 앞당길 3대 기술로 손꼽은 것은 인공지능, 나노기술, 생명공학이었다. 최근 한반도 상황을 보면 북한의 핵무기 기술도 특이점 리스트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990년 한·소련 수교, 1992년 한중 수교로 존립의 위기를 절감한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라는 대도박을 단행했고 결국 2006년 1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당시에는 `장난감 쇼` 정도로 치부하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6년 1월의 4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9월 5차 핵실험, 그리고 이번 6차 핵실험을 통해 북한의 핵능력은 기하급수-수확체증의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핵무기 실험에 합격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핵보유국의) 피니시라인을 돌파한 것"이라 평가했는데 북한은 이제 핵무기 원조인 미국과 맞상대하려는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이쯤 되면 커즈와일이 얘기하는 특이점과는 성격이 다를지 모르지만 한반도 지정학에 본질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역임한 헨리 키신저의 제안이 이를 웅변한다. 그는 북핵 동결을 전제조건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모종의 딜을 거론했다. 키신저는 누구인가? 하나의 정치단위가 다른 정치단위를 예속시키지 못하게 제한을 가하는 `세력균형`을 외교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온 그는 러시아(구소련)를 견제하기 위해 대만과의 단교도 불사하고 중국과 데탕트를 추구했던 장본인 아닌가? 스티브 잡스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키신저 전기에서 미국의 이익 앞에 다른 모든 것을 종속변수로 삼는 그의 냉혹한 행태를 서술했는데 그런 그의 눈에 북한은 세력균형을 흔드는 존재로 다가왔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북 정책 패러다임도 원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

먼저 `한반도 비핵화`라는 정책 목표가 환상인지 현실인지를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북한의 경우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적어도 상당 기간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 여러 채널에서 확인되고 있다. 실로 유감이지만 노태우정부 이래 역대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성역화`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용기 있게 인정해야 한다. `핵무기 없는 북한`이라는 소망사고에서 벗어나 `핵무기 있는 북한`이라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힘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술핵 배치를 극력 반대했던 존 매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검토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동북아의 `라프로슈망(rapproachement)`, 즉 호혜협력을 가져올 대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한국을 방문 중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최근 한·러 정상 간 에너지협력 합의를 높이 평가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극동에 안정적 에너지 공급처가 필요하고 한국은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는 윈윈의 논리인데 이는 경우에 따라 남·북·러시아 3각 협력으로 발전할 잠재력을 안고 있다. 한 손에는 퍼싱Ⅱ라는 탄도미사일을, 다른 한 손에는 경제협력이란 카드를 동시에 쥐고 독일 통일에 성공한 교훈을 슈뢰더는 일깨운다.
더구나 한·러 에너지 협력의 기반은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 그리고 전력망연결이라 중국이 추진하는 녹색경제 전략과도 부합한다. 일명 `그린 데탕트` 전략이다. 성공의 관건은 동북아의 `쿼드라앵글(quadrangle)`이라 불리는 미·중·러·일 관계를 어떻게 조율할 것이며, 북한을 어떻게 상호의존의 네크워크 속으로 들어오도록 하느냐에 있다. 진영논리를 넘어 창조적 상상력과 치밀한 전략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에 정녕 키신저는 없는가?

[김상협 카이스트 초빙교수·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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