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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통신] 법원의 역할, 법관의 양심

  • 입력 : 2017.09.04 17:24:58   수정 :2017.09.04 17: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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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이 있습니다. 1999년 대통령자문기구로서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을 때 위원 위촉식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영국이 한때 어려움에 빠졌을 때 영국을 구한 것은 감리교, 언론과 법원이었다. 한 국가가 위기를 당해도 종교와 언론 그리고 사법부만 제대로 역할을 하면 국민은 희망을 잃지 않으며 그 나라는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일부 언론은 사회 공기(公器)로서의 역할보다는 자기주장이나 이익 추구에, 일부 종교는 영혼 구원보다는 기복(祈福)을 부추기며 교세 확장에 빠져 있는 것이 지금의 실정입니다. 법원은 나름대로 제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지만 국민의 신뢰는 미흡한 형편입니다. 그 신뢰는 법관 개개인의 실력과 투철한 사명의식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 줄 제도로서 사법권 독립의 틀 위에서 형성될 것입니다.

사법권의 독립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자 가치입니다. 한 나라가 민주국가인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사법부가 독립되어 그 역할을 다하는가입니다. 선진국 기업들이 외국에 투자할 때 고려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그 나라의 사법부가 독립되어 있는지 여부입니다. 그렇기에 사법권 독립이야말로 국가의 품격을 결정하는 요소이자 국가발전의 핵심 요소입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합니다. 법관의 독립과 함께 재판의 준거 및 해석기준을 규정한 것입니다. 이 조문에서 말하는 헌법과 법률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는데 양심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만약 양심이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인 것이라면, 법관에 따라 재판결과가 달라져 재판은 운수보기(?)가 될 것이고, 당사자는 불안해질 것이고, 법원은 신뢰를 잃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판에 있어서 법관의 개인적 주관은 배제돼야 합니다. 그렇기에 양심은 개인의 주관·소신이나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당성을 가진 객관적인 기준을 말하는 것입니다.

양심에 해당하는 영어단어인 `conscience`는 `함께`라는 `con`과 `본다`라는 `scientia`가 결합된 어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그러합니다. 결국 양심은 `공동체가 함께 인식하는 이성적 판단`이라 할 것입니다. 독일 법조에서 인정되는 "자기 신념에 어긋나는 설교를 하는 성직자는 존경할 수 없지만, 자기 소신에 어긋나는 판결을 하는 법관은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신조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공동체적 이성인 양심이 변화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 양심은 시류에 따라 가볍게 흔들리며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전과 함께 서서히 진중하게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흔히 지금까지의 선례에 반하거나 대부분의 법관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판단을 내는 이른바 튀는 판결이나 소수의견은 시대와 역사의 변화에 따라 다수의견이 될 가능성이 있고 그 당부를 떠나 독립된 법관의 판단이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 이상 높이 평가하며 박수칠 일은 아닙니다. 만약 자기 철학과 소신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재판제도를 이용한다면 이는 헌법정신에 반하는 것입니다. 법관은 근본적으로는 어깨동무를 하고 나아가는 가운데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법원은 가볍게 흔들리지 않고 신중하게 방향을 정하고 묵직하게 나아가는 항공모함 같아야 합니다.


법관을 진보 또는 보수로 구분하는 세태는 안타깝습니다.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객관적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법원을 우리는 소망합니다. 법관 스스로도 그런 세태에 휩쓸리지 않도록 자중자애해야 합니다. 전체합의과정에서 다수의견이 결정되면 자신의 의견을 접고 다수의견에 가담하며 객관적·중립적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어느 대법원장의 처신처럼 말입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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