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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악세계] 디 올드 이스 더 뉴

  • 입력 : 2017.09.01 15:50:40   수정 :2017.09.04 17: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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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페어라는 행사가 있다. 매년 한 번씩 열리는 음반 축제다. 다운로드마저 사라진 시대, 아직도 음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CD와 LP를 사고판다. 2011년 처음 개최되었을 때는 CD도 제법 큰 목소리를 냈지만 어느덧 LP가 주가 되었다. 이 행사에서 찬연히 빛나는 순간의 주인공은 한국에서 LP가 대량 생산을 멈춘 1995년, 그 무렵을 전후해서 태어난 이들이다. 새로운 이벤트에 대한 호기심으로 온 그들이 현장에서 디지털로만 듣던 음원을 음반으로 들을 때의 표정을 보는 건, 7년째 열린 이 행사를 꼬박꼬박 가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직경 12인치의 플라스틱 판을 턴테이블에 얹은 후, 바늘을 올려 음반을 듣는 그들의 표정은 그저 음악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제의에 가깝다.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혹은 하드 디스크에 기록되는 파일, 혹은 스마트폰을 스치고 지나가는 스트리밍이 아닌, 소리가 담긴 물질을 접했을 때의 경외감이 얼굴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 순간, 음악은 멜론 차트를 스쳐 지나가는 인기의 데이터를 넘어선다.

스트리밍이 음악 청취의 대세가 되면서 인류는 그 어떤 때보다 가장 편하게 음악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음반을 사는 수고는 물론이거니와 다운로드 받아서 하드 디스크에 저장하는 일조차 불필요해졌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해 급격하게 변하는 시장 환경이 이렇듯 편리함만을 제공하는 건 아니다. 대신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 물성의 소유가 안겨주는 쾌감을 박탈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음반을, 특히 물성의 극치인 LP를 사본 적 없는 세대에게 아버지가 듣던 LP를 본인이 직접 소비하는 쾌감은 또래 집단과는 차별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우월감을 주는 경험은 곧 소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미국에서 LP의 성장세는 매년 20% 이상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늘어난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유의미한 판매량 증가는 없지만 다시 LP를 찍는 뮤지션들이 늘어나고 있다. 모든 음악 플랫폼 중 LP만큼 소유의 기쁨을 충족시키는 매체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매체이기도 하다. 30×30㎝의 커버와 지름 12인치의 바이닐은 마치 대화면 TV와 같은 시각적 쾌감을 준다. 음악의 역사에서 LP의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에 커버 아트가 가장 발달했던 이유 또한 이 크기에 있다. 종이 커버에 크게 인쇄된 아트워크, 그 안에 담긴 까만 플라스틱 원반, 조심스레 바늘을 판 위에 얹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 과정. 한 면이 끝나면 뒤집어서 뒷면을 다시 재생해야 하는 수고로움. 이 모든 과정이 합쳐져 음악을 듣는 행위는 완성된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제의로서의 예술`은 LP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MP3플레이어로 처음 음악을 접했고, 싸이월드 BGM으로 처음 음악을 구입했던 세대가 음악 시장의 주 소비층이 된 지금이다. 청소년기에 스마트폰이 등장했고 모바일 혁명을 체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과 그 이후 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SNS는 인스타그램이다. 이 앱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아날로그적 질감을 주는 필터를 활용해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올리는 데 있었다. 그런 세대에게 LP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음악을 듣는 전혀 다른 방법에 대한 발견이다. 턴테이블이 없는 이들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LP로 구입하고 커버를 찍어 인스타에 올리는 게 증거다.

CD는 디지털의 출발이었다. MP3는 디지털의 과정일 뿐이다. 웨이브, 플랙 같은 무손실 음원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LP는 아날로그의 완성이다. 토머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이래 인류는 LP를 뛰어넘는 아날로그 음악 저장 매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디 올드 이즈 더 뉴(The old is the new)`.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운 것, 이라는 이 문장의 의미는 바로 음악을 위해서 존재하는 듯하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된 지금, 혁명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에 의해 완성될 것이다. 아무리 막강한 공군력을 갖고 있어도 결국 전쟁을 끝내는 건 보병이듯이.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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