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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코리아 뉴어젠다] 글로벌 언어로 자리잡은 '엉터리 영어'

  • 입력 : 2017.08.28 17:35:40   수정 :2017.08.29 09: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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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에 비해 유난히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원어민(native speaker)에 근접한 발음을 구사하지 못하면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특히 문법과 어법에 예민해했다. 영어가 모국어인 내가 볼 때는 꽤 괜찮은 영어 실력을 갖고 있는데도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듯싶었다.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저서 `글로벌 언어로서의 영어`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숫자는 원어민보다 비원어민이 3배 정도가 많다고 한다. 즉,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사람보다 강한 악센트와 불완전한 문법의 `엉터리 영어(Broken English)`를 사용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콩글리시, 중국에선 칭글리시, 프랑스에선 프랑그레라고 불리는 영어다. 약 15년 전의 통계이니 그동안 진행된 글로벌화와 범세계적 인구 이동의 증가를 감안하면 2017년 현재 그 비율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와 같은 영어권 나라에 가면 뉴욕, 런던, 밴쿠버, 시드니 등 대도시에 1세대 이민자와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원어민의 영어 못지않게 비원어민 영어도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도시에 살고 있는 원어민들은 다양한 형태의 엉터리 영어에 익숙해져 있다.

얼마 전 내가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한국에서 온 교수 한 분의 알아듣기 어려운 콩글리시 발표를 듣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색한 문장과 심한 악센트가 세미나 내내 귀에 거슬려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발표가 끝나자 한 참석자가 질문을 하는데 프랑스 출신인 그 사람은 발표자보다도 더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질문을 시작했다. 다음 질문자는 아시아에서 온 학자였는데 문법도 엉망이고 악센트가 워낙 심해 서로 의사소통이 될는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질의응답을 잘 이해하는 듯했고 무엇보다 불완전한 영어로 자신의 궁금증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 없이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나보다도 더 열심히 발표하고 토론하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 중국 등에서 온 고급 이민 인력이 많이 일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에선 너무나 자연스럽고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인도인들의 경우 영어를 모국어처럼 배운다고 해도 강한 악센트 때문에 정확히 알아듣기 어려울 때도 있고 중국이나 유럽처럼 비영어권에서 온 기술자들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그래도 이들이 언어 때문에 기술혁신을 가져오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비즈니스를 하지 못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인종의 다양성만큼이나 `영어의 다양성`이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상징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한국인들도 발음이나 문법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해서 자신의 영어 실력을 과소평가할 필요가 없다. 영어가 글로벌 언어인 것은 분명하지만 원어민보다는 비원어민의 사용자 수가 월등히 많은 글로벌 사회에서 엉터리 영어에 익숙하지 않다면 오히려 글로벌하지 못한 편협한 사람, 문화적 기술이 결여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한국인들은 콩글리시를 창피하게 여길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글로벌 언어를 쓰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배짱이 필요하다. 영어 발음과 문법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글로벌 언어가 되어가고 있는 엉터리 영어에 대한 이해, 특히 미국, 영국 등 영어권의 선진국만 바라보지 말고 다양한 인종이 섞여 다양한 형태의 엉터리 영어를 쓰면서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글로벌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진정한 글로벌 시민의 자세가 아닐까.

[레니 문 연세대 국제학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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