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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사이트] 사극 유감

  • 입력 : 2017.07.28 15:55:50   수정 :2017.08.01 11: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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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우의 출연이 잦아졌다. 김인우가 누구일까?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와 윤동주를 몰아치던 고등형사, `박열`의 내무대신 미즈노 그리고 `군함도`의 소장 시마자키. 그가 바로 일본인 전문 배우 김인우이다.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영화들이 많아지면서 더불어 김인우가 바빠졌다. 그는 본토 일본어 발음으로 그 누구보다 더 정교하게 일제의 악행을 그려낸다. 정말이지 밉게, 분노를 일으키도록 말이다. 그런데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작품마다 김인우의 활용법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우리가 일제강점기 시절의 `일본`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하고, 활용하고 있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의 첫 번째 역사극은 `황산벌`이었다. 신라, 백제가 각각 경상도, 전라도 방언을 썼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발상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황산벌의 비장함으로 마무리되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워낙 많다 보니, 너무도 기발한 발상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영화 `황산벌`은 계몽적인 역사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랬던 이준익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 `박열`까지 그려냈다. 누구나 다 아는 대문자 역사에서 소문자 역사로 옮겨온 결과가 바로 `박열`이었던 셈이다.

`박열`은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 박열을 보여준다. 그는 관동대지진의 희생양이지만 이준익 감독은 그를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용기 있는 이상주의자로 그려낸다. 그런데 그게 무엄하거나 경박하지 않다. 무정부주의자 박열의 좌충우돌이 역사적 상처를 경시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조선인들에게 일어난 참사를 암시적으로 보여줄 뿐 스펙터클로 재현하지 않는다. 자경대에 의해 난자된 조선인들의 형편은 몇 마디의 대사로도 충분히 전달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그들이 살아냈어야 했던 일제강점기가 너무도 구체적인 고통으로 다가온다.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그런 점에서 `박열`과는 완전히 다른, 반대의 지점에 놓인 작품이다. 우선 `군함도`는 류승완 감독이 처음 시도하는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인들이 강제적인 노동에 시달리고, 거의 인간 이하의 노동 기계로 취급받았던 아픔의 섬 하시마. 이는 영화적 환상이나 고난의 스펙터클로 다루기엔 아직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 사실 류승완 감독의 장점이라면 약간씩 정통이나 정석에서 벗어난 이류의 정서와 B급 감성에 있다. 완벽한 미장센과 철두철미한 서사학으로 무장한 미학자가 아니라 직관으로 응수하는 동물적 영화감각이 류승완에게 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그리고 하시마섬의 고통은 B급 혹은 이류의 직관으로만 다루기에는 부담스럽고, 어려웠던 모양이다. 영화 `군함도`의 인물들은 모두 다 평면적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을 만큼 뻔하다. 거기엔 `고통과 치욕`이라는 계몽적 감정에 대한 호소만 있을 뿐 해석이나 접근, 판단이 없다. 류승완이 아닌 다른 누가 만들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그리고 누구나 분노할 수밖에 없는 계몽적 역사극에 멈추고 만 것이다.

류승완은 곧잘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교되곤 한다. 할리우드의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는 2차 세계대전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로 그려냈다. 여전히 B급이고, 엉뚱했지만 그렇다고 전쟁의 참혹함이 우스워지지는 않았다.


한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올여름 처음으로 실제 역사를 토대로 한 `덩케르크`를 연출했다. `덩케르크`의 인물들은 거의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단지 당시 상황을 충실히 보여줄 뿐이다. 두 작품 모두 역사를 소재로 했지만 재현과 판단을 담고 있다. 어쩐지 류승완 식의 정서와 직관이 몹시 아쉬운 사극 유감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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