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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필동정담] 하루키와 비정규직

  • 노원명
  • 입력 : 2017.07.17 17:27:32   수정 :2017.07.17 17: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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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금까지 수십 편의 소설을 썼지만 작품 속 주인공 캐릭터는 `자기복제`라 해도 좋을 만큼 비슷하다. 거의 남자이고 30대이며 하루키식 표현에 따르면 일반 가정을 구성하는 평범함이 `결락(缺落)`된 존재다. 어느 하루 아내로부터 `남자가 생겼다`는 고백과 함께 이혼통보가 날아들어도 화내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는 성격이다. 아이가 없는 대신 고양이를 좋아하고 요리나 다림질 같은 가사에 취미와 재능이 있으며 플레이보이는 아니지만 늘 한두 명 이상의 잠자리 상대가 있다. 재즈와 로큰롤을 즐겨 듣는다. 자신이 하는 일에 프로의식이 있고 주변 사람들도 이를 인정한다. 그리고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돼 인기를 끌고 있는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은 하루키적 비정규직 인간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추상화 작가를 꿈꾸었던 주인공은 남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예술적 성취와는 거리가 먼 일이지만 그는 성실하고 유능하게 맡은 일을 해내고 일감과 통장 잔액은 조금씩 불어난다. 집세를 내고 자동차를 굴리고 제대로 된 저녁상을 차리는 데 문제가 없다. 1988년 작 `댄스댄스댄스`의 주인공도 비슷하다. 주인공은 잡지사가 지정한 주제(이를테면 맛집 탐방)를 취재한 후 마감에 맞춰 원고를 보내는 자유기고가다.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을 못하게 됐지만 통장에는 몇 개월쯤 걱정하지 않고 여행할 만한 돈이 있다. 작가를 꿈꾸면서 수학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IQ84`의 남주인공 덴고도 생활이 곤궁하지는 않다.

일본에선 정규 취업 대신 아르바이트만으로 살아가는 `프리터(freeter)족`이 등장한 지 꽤 오래됐다. 비정규직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하루키 소설은 일종의 `프리터 문학`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선 `알바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광고와 드라마가 늘고 있다. 하루키 문학이 프리터족의 자유로운 삶을 주목한다면 한국 드라마에선 비정규직의 비애에 앵글이 맞춰진다. 일본은 노동값이 비싼 사회이고 정규-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크지 않아 아르바이트로 기본적 생활이 가능하다. 만약 비정규직 삶의 수준이 하루키 소설 주인공 정도 된다면 자발적으로 프리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한국에서도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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