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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영재·과학고를 향해 달리는 아이들

  • 심윤희
  • 입력 : 2017.07.17 17:15:30   수정 :2017.07.17 1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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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인 아들의 친구 중 영재고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주 6일, 하루 7시간 이상 수학·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방학이 되면 강남의 영재고 준비학원 종합반에서 주 6일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수학, 과학 수업을 들을 계획이다. 하지만 수업 후 독서실에서 자정이 넘도록 자습하는 것은 기본이고, 오전 시간은 보충학습 스케줄로 빼곡하다. 소위 `영재·과학고 키즈들`에게 중요한 시험인 물리올림피아드(물올), 화학올림피아드(화올) 등이 7월, 8월에 잡혀 있어 그야말로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 하는 시기다. 보통 중학생 엄마들이 들으면 입이 딱 벌어질 얘기다. 주로 서울 강남과 목동에서 펼쳐지고 있는 풍경이거니 하고 지나쳐 버리면 될 테지만 나 같은 `팔랑귀 엄마`들의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 아이만 뒤처질지 모른다는 조바심, 수월성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부모의 욕망이 학원가의 공포 마케팅과 결합되면서 영재교육은 유행을 넘어 과열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영재·과학고를 희망하는 아이들은 보통 초등 5~6학년 때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중3 5월 치러지는 영재고 입시를 앞두고 선행학습, KMO(수학올림피아드), 물올, 화올 등을 준비하며 마라톤을 펼치는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교육 저연령화의 원인인 초등 영재교육원 입학 전쟁이 있다. 중1~2에 학원을 찾아갈 경우 "왜 이제 왔냐"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사교육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보통은 수학, 과학 합쳐 월 150만원이 들어가지만 분야별 팀수업 등을 포함하면 월 300만~400만원을 족히 쓴다고 한다. "돈이 무서워 영재고 준비시키는 게 엄두가 안 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새 정부는 외고·자사고 등이 고교 서열화를 유발하고, 선행학습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사교육 전쟁은 영재고, 과학고 입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영재를 발굴하고 그에 걸맞은 교육을 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딱히 영재라고 보기 힘든 아이들까지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재교육진흥법 제2조 1항에 따르면 영재란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해 특별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영재교육 실상은 `타고난 잠재력`보다 `교육`에 방점이 찍힌다. 교육의 주도권은 "당신의 아이를 영재로 만들어주겠다"는 학원들이 잡고 있다. 영재고, 과학고 가면 대입이 보장되니 조기에 빨리 끝내자는 생각으로 준비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최근 한 영재고에 합격한 지인의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달린` 경우가 아니다. 중2 하반기 과학학원에 갔다가 영재고 준비를 권유받고 강남의 전문학원을 노크했다. 물리, 화학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성적이 수직상승했다고 한다. KMO, 물올, 화올 수상 실적 없이도 입학 관문을 통과했다. 이런 경우는 희귀 사례라는 것이 영재고 준비 학부모들의 얘기다. 합격자의 상당수가 어려서부터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라고 한다. 영재·과학고의 정원은 연간 2500명으로 고입 지원자의 0.5%쯤 된다. 2018학년도 서울과학고 등 8개 영재고의 평균경쟁률은 13.3대1을 기록했으니 합격자는 소수다. 불합격해 일반고에 진학한 후 뒤늦게 온 사춘기로 방황하거나 소홀히 한 영어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만 15세에 이들이 맛보는 좌절은 `영재고 권하는 사회`의 폐해다. 영재·과학고에 들어간 학생들 중 너무 오래 달린 나머지 `번아웃(Burn out·탈진)`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해 영재고 졸업생의 8.4%가 의대에 진학한 것을 놓고도 세금낭비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영재·과학고를 없애자는 얘기는 아니다. 과도한 경쟁을 막으려면 문제를 중등 수준에서 출제하고, 학원들이 공포마케팅을 하지 못하도록 기출 문제를 공개하는 등 선발과정을 투명히 할 필요가 있다.
또한 3박4일 심층면접을 통해 영재성을 철저히 검증하는 것이 사교육 폭주를 막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요즘 눈만 뜨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승자가 돼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기술의 미래는 영재, 수재들이 이끌고 가야 하는데 `만들어진 영재` `탈진한 영재`들이 상당수라고 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학원 뺑뺑이를 돌며 영재를 목표로 달리는 `보통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더 답답하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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