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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다락방] 사랑을 향하는 문학

  • 입력 : 2017.07.14 15:52:59   수정 :2017.07.20 18: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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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연애 소설 한 편을 썼다. 주인공 둘은 레즈비언이었는데 그 소설을 발표한 이후에 가까운 사람 몇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이런 이야기가 아직은 아니지 않나, 위험하다는 걱정이었다. 소설을 쓰면서 너무 평범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기에 그 사람들의 염려가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불이익과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나는 거침없이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 만난 적이 없었다. 동성애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런 이슈에 대해 별 흥미가 없다, 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주변에는 동성애자가 없으니까, 라고 단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동성애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발 동성애자 축제 같은 건 안 했으면 좋겠어, 라는 `온건한` 혐오 발언을 듣기도 했다. 글쎄, 딴 건 몰라도 내 자식은 동성애자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이런 식의 말들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 발언들을 복기하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드러내놓고 마음껏 혐오하는 것은 조금 걸리고 촌스러우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 그러나 그러한 `온건한` 혐오 또한 혐오라는 점에서는 과격한 혐오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성소수자들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만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세련되고 폭력적인 혐오의 방식이다.

혐오는 극악한 범죄의 형식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은밀한 혐오는 개인들의 얼굴을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떤 불순한 전형을 그려놓고 그 이미지로 개개의 인간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눈에서 보이지 않도록, 그 구체적인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차별 받는 사람은 얼굴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만의 눈빛과 미소와 감정과 생각과 기억을 지닌 복잡하고 아름다운 개개의 얼굴은 혐오의 거친 이미지로 덮여버린다. 아예 삭제되어버리거나.

지난 4월 동성 군인과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한 육군 대위가 구속됐고 성소수자 군인들이 수사 대상이 됐다. 수사 대상자가 된 군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수사관들은 임의 제출 동의도 받지 않고 휴대 전화를 가져가 뒤지며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다른 성소수자 군인의 이름을 대라는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구속된 육군 대위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합의된 성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번 선고는 동성애가 그 자체로 범죄라는 혐오 프레임 안에서 작동했다. 국제 앰네스티는 이 사건에 대해 `시대착오적이고 차별적인 군형법 조항을 오래전에 폐지했어야 했다`는 우려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소수자는 잠재적 범죄자들이 아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혐오의 프레임 속에서 개개인의 얼굴은 삭제되어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성적 지향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혐오는 마음껏 증식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마, 제발 너희끼리 있어, 라는 당당한 요구가 득세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자기 존재를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너무 많은 혐오, 그러나 너무 적은 사랑.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나는 언제나 사랑을 택하고 싶었다.
사랑을 향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삶은 혐오의 상상력이 감히 가닿을 수 없는 곳에서 죽지 않고 내내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지워진 얼굴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려나가면서. 2017년,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힌 군인과 같은 땅에 사는 작가로 나는 글을 쓴다. 그 사실을 잊지 않겠다.

[최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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