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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매경포럼] 해리슨 버거론의 그림자

  • 윤경호
  • 입력 : 2017.07.12 17:31:25   수정 :2017.07.12 17: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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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슨 버거론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C학점이 최고 점수다. A+와 F학점은 같은 등급으로 꼴찌다. 딱 중간에 해당하는 점수를 얻어야 교사로부터 잘했다고 칭찬을 듣는다. 버거론은 시험 볼 때마다 A+를 받는다. 공부 잘하는 똑똑이로 대접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3년째 유급을 거듭한다. 급기야 학교는 그의 뛰어난 지능을 떨어뜨리기 위해 뇌 수술을 받도록 하고 손오공 머리띠 같은 장치를 통해 통제에 나선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계속 의문을 갖던 버거론은 머리에 묶인 장치를 풀고 방송국 스튜디오에 몰래 들어가 체제에 저항하는 연설을 한다. 공안에게 그는 끌려갔지만 버거론의 연설 녹화본이 외부에 퍼진다. 공평한 세상에 마취돼 있던 대중은 자신들의 불쌍한 처지를 점차 깨닫는다.

`해리슨 버거론(Harrison Bergeron)`이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전개되는 모습들이다. 커트 보니것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1995년 브루스 피트먼 감독이 만들었다.

영화 속 시대 배경은 2053년 미국이다. 자본주의의 꽃이 한껏 피었지만 사회의 양극화는 극도로 심해졌다. 다수의 실업자가 생겨 불만과 저항이 만연한다. 마침내 사회혁명이 일어나 새롭게 권력을 잡는 세력이 등장한다. 새로운 지배자들은 국민에게 균일한 행복을 주겠다며 완벽하게 평등한 세상을 구현하려 나선다.

모든 국민은 동일 수준의 지능을 가져야 한다. 이를 통제할 전파 수신용 헤드밴드를 착용토록 한다. 똑똑한 이에게는 지능을 떨어뜨리도록 전파를 보낸다. 뒤지는 이에게는 지능을 끌어올리도록 전파를 띄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운동선수에게는 팔뚝 근육의 힘을 떨어뜨리는 샌드백을 매달게 한다. 재능을 타고난 발레리나의 종아리엔 다리를 마음껏 뻗지 못하도록 방해 장치를 얹는다.

결국 사회는 하향 평준화로 치닫는다. 지배자들이 원하는 공평한 세상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암울한 미래를 향해 질주할 뿐이다.

18세기 프랑스 정치사상가 샤를 루이 몽테스키외는 유명한 저서 `법의 정신`에서 법 앞의 평등이라는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 핵심 의제인 삼권분립도 몽테스키외에게서 나왔다. 정치적 자유라는 개념도 그의 정리가 확 와 닿는다. 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라면 자유란 욕구하는 것을 행할 수 있음과 동시에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설파했다.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혁명 정신을 이끌었고, 미국의 독립전쟁에 그의 이론이 철학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현대사상가들은 법 앞의 평등과 삼권분립을 주창한 몽테스키외가 오히려 획일적인 평등에 대해서는 극도로 경계하고 비판했던 점을 주목한다. 완벽한 평등, 극단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시민을 오히려 괴롭히고 자유를 빼앗는다고 몽테스키외는 주장했다.

문재인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공공 부문 블라인드 채용에서 해리슨 버거론의 그림자를 읽는다. 공공기관은 7월부터, 지방 공기업은 8월부터 신규 직원을 뽑을 때 전면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입사지원서에 학력, 가족관계, 출신지역 등을 기재하지 않는다. 필기시험과 면접만을 활용해 선발한다.

선입견과 편견 없이 현재의 능력만 측정해 뽑겠다는 취지는 백번 수긍할 수 있다. 면접과 필기시험 외에 사전 자료나 정보를 안 본다는 것이니 동일한 선에서 출발토록 하자는 뜻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 위주나 연고주의를 떨쳐내자는 건 알지만 뒤집어서 보면 획일적 평등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친다.

출신 학교나 성적은 학창 시절에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의 하나인데 아예 인정하지 않는 데는 반론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심리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네 살짜리 어린이들에게 실시한 마시멜로 실험을 보라. 10분 동안 눈앞에 있는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는 아이에게 한 개를 더 주겠다는 교사의 제안에 대한 애들의 반응이다. 먹고 싶지만 참고 버텼던 아이와 당장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입에 넣어버린 아이를 지켜봤더니 성장 후 학업 성적에서 먹지 않고 참았던 아이들이 앞선 것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단순히 끈기의 문제인지 그를 뛰어넘는 인성의 차이인지 따져봐야 한다.


똑똑한 사람과 창의력 넘치는 사람이 주변 눈치 안 보고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줘야 한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능이라면 발현할 기회를 막아서는 안 된다. 창의력과 자유를 말살하는 정책은 그 사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이는 공동체 전체에도 손실이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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