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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행복의 조건

  • 입력 : 2017.07.12 17:29:38   수정 :2017.07.12 19: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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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스위스에 다녀왔다. 재작년부터 여러 번 계획을 세웠지만 매번 일이 바빠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터라 이번엔 작심하고 출발 예정일 3개월 전에 여행의 모든 비용을 선결제해 버렸다. 기왕이면 환불이 불가한 항목으로 고른 덕분에 드디어 9박10일간 스위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스위스에 살고 있는 후배 커플을 만났다. 셋이서 자동차 여행을 하며 둘러본 스위스는 고요한 가운데 기품이 있었다. 취리히에 도착해서는 가장 먼저 세계적인 예술 박람회인 바젤아트페어를 참관했다. 소도시 대여섯 곳을 돌며 만난 크고 작은 박물관과 갤러리, 프랑스 국경의 르코르뷔지에 건축물과 비트라 박물관 등이 기억에 남는다. 좋아하는 건축가인 페터 춤토어의 건축물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박물관이나 교회에서는 연주자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실내악 연주회가 꽤 자주 열렸다. 스위스는 빼어난 절경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소도시 대여섯 곳을 돌며 만나본 스위스는 문화, 예술적으로도 굉장히 풍부한 나라였다.

가히 뮤지엄 기행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 만한 스케줄이었지만 정작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자 기쁨은 뮤지엄 밖에서 찾았다. 낮 기온이 34도를 웃도는 어느 날이었다. 오후 다섯 시 무렵 노천 카페에 앉아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던 중 후배의 남자친구가 취리히를 가로지르는 리마트강에 가서 수영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가에서 수영이라…. 강 주변에서 조깅을 하거나 피크닉을 할 수는 있겠지만 수영이라니, 물은 깨끗할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의심을 가득 안은 채 일단 따라 나섰다. 리마트 강가에 도착하자 이곳이 강가인가 어느 리조트의 야외 수영장인가 싶은 풍경이 펼쳐 있었다. 일찍 퇴근한 직장인들과 학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수영을 하고 있었고, 강가 옆 잔디밭에는 태닝을 하며 책을 보는 이들이 있었다. 강가 한편에는 시 정부가 만들어둔 탈의실과 샤워실 등 편의시설까지 마련돼 있었다. 강물은 마치 높은 산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일급수처럼 맑고 차가웠다.

어릴 때 가족 여행으로 떠났던 휴양지에서 수영을 하던 때 이후 거의 처음으로 나는 강가에서 수영을 했다. 저 멀리 취리히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었고 물가에는 찬란한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귓전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새소리가 들려왔다.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이날 강가의 물놀이는 더위에 지친 몸은 물론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이후 서울로 돌아오기 전까지 나의 제안으로 세 번 더 강가를 찾아 수영을 했다. 햇빛 쨍쨍한 날 취리히의 차가운 강물에 둥둥 떠서 바라보던 파란 하늘, 빨려 들어갈 듯 높고도 깊었던 그 하늘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꾼다. 이번 여행 내내 나에게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시작된 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는 사회생활에서도 이어졌고 지금껏 나의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고 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경쟁을 통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가능성이 십분 발현되기도 하고 발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을 통한 성취를 최우선시하는 사회에서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릴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간 놓치고 있었던 여유로운 일상이 주는 행복을 이번 여행에서 경험했다. 쉰이 넘은 나이에 새삼 행복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해질 무렵 리마트 강가에서 수영을 하며 느꼈던 마음의 평화는 살면서 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 얻은 만족감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질량의 행복감이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의 국민의식을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면 행복하기 위해 거창한 무언가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남 보란 듯이` 살지도 않는다. 물질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전체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존중한다. 남보다 빨리 갈 필요도 없다. 조금 느릴지라도 꿈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삶, 경쟁에 밀릴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남을 밟지 않아도 되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경쟁 속에서 얻어지는 성취감과 일상의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삶 사이의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아무래도 앞으로는 후자에 더 큰 가치를 둘 것 같다.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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