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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한류 이야기] 밥상을 뒤엎는 반란

  • 입력 : 2017.07.07 15:53:44   수정 :2017.07.07 19: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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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반이 밥상을 뒤엎을 때마다 얼마나 서럽고 놀랐던지. 그럴 때마다 보쌈김치를 잘 다듬어 다시 상을 차리곤 했단다. 그러면서 배운 개성 음식이다." 돌아가신 시아버님에 대한 어머님의 푸념은 항상 이렇게 시작돼 "그 성질 덕에 개성 음식에 도가 튼 거 아니니? 그래도 정 많은 양반이었지"라는 자위 섞인 상념으로 끝나곤 했다.

밥상을 엎는 배포(?) 큰 남자를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됐지만 `밥상을 엎는다`는 것은 익숙해진 어느 체제를 완전히 새롭게 하기 위한 반란이나 개혁을 뜻하기도 한다. 현대적 한식을 표방하는 식당을 운영한 지 어느덧 15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몇 차례 밥상을 뒤엎을 수밖에 없는 계기가 있었다. 새롭고 혁신적이라고 환호받았던 콘셉트와 메뉴가 시간이 흘러 더 이상 `현대적`이지 못할 때, 안착된 시스템을 버리는 혁신을 꾀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마다 `밥상 뒤엎어 보기`라는 주제 아래 회의가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보기`는 행동을 수반하는 `하다(do)`의 능동사에 앞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see)`가 우선이다. 당연시되어 있거나 너무나 익숙해진 메뉴와 습관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밥상을 뒤엎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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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한식`이라는 타이틀을 걸어 놓으니 시대가 변하며 현대의 개념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익숙해진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다시 그 시대에 맞게 몸을 맞춘다는 것은 큰 고통이 따르는 일이어서 왜 `현대적`이라는 개념에 메뉴를 묶어두었을까 가슴을 칠 때도 많았다. 어떤 것을 넣고 없앨지 객관적이고 자아성찰의 관점을 통해 내리는 결론은 항상 두렵고 아프다. 그러나 이 불편한 시간을 거쳐야 새로운 밥상을 차려 낼 수 있고 이 시대에 맞는 한식으로 재탄생할 수 있기에 감사한 기회이기도 하다.

현대라는 것은 과거와 미래가 있어야 존재하는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과거로부터 어떤 변화를 거쳐 이 음식이 존재하는가를 무시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만 음식을 만든다면 그 음식은 현대적일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한식이 굳이 현대적이어야 한다고 피력하는 것은 아니다. 궁중식과 반가 음식, 향토 음식, 길거리 음식, 뉴월드 음식의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아 가장 많이 먹게 되는 음식이 바로 미래에 우리의 한식이 되기 때문이다.

`한식 세계화`라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가 등장한 지 어언 10년이 되었다. 이 사업을 특정 정권의 정치적인 전략쯤으로만 여길 수도 있지만 많은 긍정적 요소를 남긴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소득은 우리가 한식을 다시 돌아보고, 자긍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화는 과연 어떤 시점일까. 아마도 외국인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그들의 시점에서 바라본 3인칭 시점일 것이다.

그들에게 편안히 먹힐 한식을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1인칭 시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느 때 즐겨 먹는지를 알리려는 식문화적 접근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비빔밥, 갈비, 김치찌개 모두 훌륭한 우리의 한식이지만 모두 단품 위주의 식단이다.

반면 일본은 맛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적 정취, 음식 예법, 언어 등이 총체적인 한 문화로 접근해 서양인의 생활 안에 자리를 잡았다. 날생선을 먹는 것에 거부감이 컸던 서양인들은 이제 능숙한 젓가락질을 뽐내며 스시며 사시미를 그 원어 이름 그대로 주문하고 즐긴다.

곧 다가올 평창올림픽을 찾을 세계인들을 위한 메뉴 선택 작업에 참가한 적이 있다. 올림픽 기간 중에 설날이 끼어 있어 떡국 이야기가 나왔는데 외국인들이 떡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떡국은 메뉴에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끈적한 떡의 식감만으로 떡국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 해가 시작되는 날 소망을 담아 새하얀 떡국을 가족과 함께 나누는 오래된 우리 문화의 의미와 정서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두고두고 아쉬웠다.

강원도에 가면 한 번은 먹고 오는 황태는 거의 러시아산이다. 하지만 이 이국의 생선은 눈과 바람, 세월을 입힌 우리의 정성 덕에 강원도만의 특별한 황금색 향토음식으로 탈바꿈했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고 한국화된 황태를 주인공으로, 구수한 된장찌개와 산나물이 함께 오른 강원도 산골 농부의 밥상 스토리를 전한다면 황태는 평창을 찾는 세계인들이 가장 먹어보고 싶은 한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식문화를 어떻게 알릴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한윤주 콩두 푸드&컬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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