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칼럼

[손현덕 칼럼] 오만과 편견

  • 손현덕
  • 입력 : 2017.07.04 17:20:47   수정 :2017.07.04 18:19:53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448358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캐나다의 얀 마텔이 1415일 동안 자국 총리인 스티븐 하퍼에게 책과 함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총 101통인데 책은 101권이 조금 넘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도자가 책, 그것도 문학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얀 마텔은 "책이란 오랜 꿈이 저장된 박물관"이라면서 하퍼 총리에게 무례한 질문을 던집니다. "소설이나 시나 희곡을 읽지 않는다면 캐나다를 위해 품은 꿈들은 무엇이 만들어냈겠는가"라고.

저는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지난 2월 홈페이지에 올린 메시지를 보고 약간 놀랐습니다. 독서를 좋아하신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언제 이런 책까지 읽으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만과 편견`.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유명한 소설이지요. 대통령께서는 `주간 문재인 4화, 스펙 없는 이력서`란 4분8초짜리 동영상에서 이 소설을 언급하셨습니다. 출신학교나 외모에 대한 편견을 갖고 사람을 뽑아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TV프로그램인 `복면가왕`처럼 공공부문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2일 청와대 참모들에게 이와 관련한 업무지시를 내렸습니다.

`오만과 편견`은 18세기 영국의 신분제도에 대한 풍자도 있지만 연인들 간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압권인 연애소설이지요. 오만은 남자 주인공 다아시의 문제였고, 편견은 여자 주인공 베넷의 문제였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연애에서 발생하는 오만과 편견을 취업 문제로 확장시켰지만 오만과 편견으로 그르치는 게 어찌 취업뿐이겠습니까? 모든 인간사가 이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고 봅니다.

대통령께서는 엊그제 문재인정부 제1기 내각 인선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취임한 지 50일이 지났으니 꽤 늦은 편이지요. 그런데도 여전히 임명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은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의 흠집과 비위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낙마시키려고 하는 야당이 편견을 가졌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코드인사니 보은인사니 이렇게 반대하는 건 편견의 산물이라는 거지요.

반대로 야당 입장에서는 청와대가 명백한 흠집이 있고 대통령께서 공언하신 대로 5대 비리가 있는데도 임명을 강행하려는 건 오만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비판합니다. 듣기 거북하시겠지요.

어찌 인사뿐이겠습니까. 최근 원전 폐기를 둘러싼 논쟁도 오만과 편견이 뒤섞여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가 원전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문재인정부의 `오만`이고 환경문제에 대한 `편견`이라고 공격합니다. 반대로 정부는 원전 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저의`를 의심합니다. 그들이 원전이 절대선인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오만이고 편견이라는 것입니다. 또 추경은 안 그런가요? 비정규직 문제는요?

대통령님, 혹시 `오만과 편견`이란 소설에서 두 연인이 어떻게 화해하는지 기억나십니까? 몇몇 사건들을 겪으면서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알게 되고 오해가 풀리면서 오만과 편견은 사라집니다. 다아시는 자신의 오만을 인정하고 베넷은 자신의 편견을 벗어던집니다. 소설은 두 사람이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으로 끝납니다.

오해가 풀려야 믿음이 생겨나게 되지요. 불신은 있지도 않은 것을 봅니다. 다아시와 베넷이 그러했지요. 그걸 풀면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게 될 겁니다. 지금의 정치권에 가장 필요한 게 신뢰 아닐까요. 뭘 해도 믿지 못합니다.

대통령께서 먼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고 그들에게 국정의 동반자라는 믿음을 주시기 바랍니다. 큰 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소설에서처럼 작은 사례, 작은 사건 같은 게 마음을 움직일 겁니다. 이 점에서는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원에 핀 들꽃까지 섬세하게 관찰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나무하고도 대화를 나누시는 대통령입니다. 그런 감성으로 야당을 끌어안았으면 합니다.

`오만과 편견`이란 소설에 정말 가슴에 새길 만한 명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편견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대한민국 정치가, 아니 더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가 이 오만과 편견의 덫에서 빠져나왔으면 합니다. 대통령께서 앞장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길 고대합니다. 국민들은 아마도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할 겁니다.

[손현덕 논설실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

박재현의 경제노트 더보기

박재현의 경제노트 썸네일내 집 마련 멀어지나?

포토 더보기